[엔터온뉴스 이소희 기자] 끊임없이 미담이 흘러나오는 연예인은 유재석 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배우계에 또 다른 ‘프로미담러’가 탄생했다.
배우 박보검은 칭찬을 몰고 다닌다. 그와 한 번이라도 호흡을 맞춰본 사람이라면 마치 간증을 하듯 박보검의 맑은 마음을 칭송한다. 늘 잃지 않는 깨끗한 미소와 함께 말투부터 뚝뚝 묻어나는 착함과 배려로 ‘재미없을 정도로 착하고 완벽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최근 KBS2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종영 기념 인터뷰를 위해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박보검을 만났다. 박보검이 인터뷰 내내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그는 촉박한 시간에 자처해서 빠르게 많은 말을 하려 노력하며 멋쩍은 웃음도 지었다.
그때 깨달았다. 아, 이래서 ‘보검매직’이 이뤄지는구나. 이렇게 착한 사람이어서, 그가 말하면 저절로 마법 같은 일이 이뤄지고 나도 모르게 홀리는 거구나, 하고 말이다.
◇ 다같이 만들어간 ‘구르미 그린 달빛’
‘구르미 그린 달빛’은 미니시리즈에서 쉽게 보기 힘든 시청률인 20%대를 돌파하며 행복하게 막을 내렸다. 인터뷰를 하던 날도 세부로 포상휴가를 다녀와 귀국한지 며칠 안됐던 날이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실 줄 몰랐어요. 많이 애청해주신 팬들 덕분에 달만 봐도 우리 드라마가 떠오를 것 같아요. 시청자들 마음속에 오랫동안 한여름 밤의 꿈처럼 남았으면 좋겠어요.”
극중 박보검은 호기심 많고 겸손함을 지닌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어느 순간 모든 것에 흥미를 잃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기피순위 1순위가 되어 버린 왕세자 이영을 연기했다. 알고 보면 이영은 왕관의 무게를 버티며 기댈 구석을 바라면서도, 은밀하게 자신과 조선의 미래를 준비하던 준비된 왕이었다.
박보검이 전작 ‘응답하라 1988’에서 분했던, 모성애를 자극하던 최택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그는 캐릭터를 잘 소화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오죽하면 박보검은 ‘박보검이 나오니 벌써 재미있다’는 유행어에 대해 “반어법인 줄 알았다. 극 초반에 중심이 잘 안 잡혀 있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진짜 칼을 갈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맨 처음 캐스팅된 배우여서 그런지, ‘모두 잘 이끌어가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담도 있었고, 이영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도 헷갈렸다는 것이다. 박보검은 이런 고민들을 회사 식구들과 가족, 선배들에게 털어놨다. 돌아온 대답은 ‘네가 주인공이 아니다’. 그는 이 말을 전하며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응답하라 1988’ 신원호 PD님이 ‘드라마가 잘 되건 못 되건 연연하지 말고 즐겁게 마무리하자. 주인공은 너희 한 사람 한 사람이다’라고 하셨어요. 그 말씀이 떠오르면서 ‘내가 뭐라고’ 싶었어요. 모두의 힘을 받아 캐스팅됐는데 내가 모두를 끌고 간다는 생각 자체가 오산 같았어요. 나 혼자해서 되는 게 아니라, 다 같이 만들어가는 거니까요.”
◇ 숨겨진 능청스러움의 발견
박보검은 주변 사람들 덕분에, 열심히 연기를 분석한 끝에 ‘이영’이라는 캐릭터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가게 됐다.
“구덩이 신을 촬영하면서 이영을 더 잘 알게 됐어요. 초반에는 어떤 느낌인지 그림이 그려지지만 진심으로 우러나오지 않았는데, (이 신을 통해) 한 장면 안에서 대사를 맛있게 하는 법을 배웠고, 어려웠던 능청스러운 연기가 점점 재미있어졌어요. 저도 제 안에 그런 능청스러움이 있을지 몰랐어요. (웃음)”
‘구덩이 신’은 이영이 홍삼놈(김유정 분)과 함께 흙구덩이에 빠지고, 벗어나기 위해 함께 고군분투한 신이다. 이후 삼놈은 이영만 남겨두고 밖으로 빠져나와 도망갔다. 이영이 삼놈과 티격태격하며 앞으로 펼쳐질 유쾌한 케미를 예고한 신이기도 하다.
“처음으로 애드리브도 한 장면이에요. 삼놈이한테 ‘팔을 좀 더 뻗어 보거라’라고 애드리브를 했는데, 유정이가 그에 맞게 ‘힘 좀 써보십시오!’라고 받아치는 걸 보고 정말 센스 있다고 느꼈어요.”
박보검은 촬영을 하면서 지칠 때가 있더라도, 자신보다 어리지만 열정적으로 연기에 임하는 김유정을 보고 ‘나도 힘들면 유정이는 더 힘들겠지’ 생각했다고 한다. 자신의 캐릭터보다 감정의 폭이 넓은 연기를 해야 했기에 더 어려움을 겪었을 거라는 것이다.
“이영이와 삼놈이의 나이는 10대인데, 그 때만의 풋풋한 사랑을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애정신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적당히 있어서 좋았어요. 감독님이 아름답고 순수하게 잘 표현해주신 것 같아서 감사해요.”
극중 나이와 더불어 김유정은 아직 미성년자여서 그런지, 드라마 속 스킨십 장면은 드물었고 그리 진하지도 않았다. 심지어는 키스신에서 박보검이 김유정의 인중에 입을 맞추며 시청자들에게 당혹감(?)을 주기도 했다. 박보검은 “더 짙은 스킨십 연기에 욕심은 없냐”는 질문에 “그건 더 나이가 들고~”라며 능청스럽게 웃었다.
◇ 이영과 박보검, 그리고 또 박보검
이영은 서사가 있는 인물이다. 우여곡절을 겪고 마음의 치유를 받으며 성장한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조금씩 배워나가며 연기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이영과 비슷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앞만 보고 직진하는 이영의 성격 탓에 생긴 ‘직진저하’라는 별명에서도 공통점을 발견했다. 박보검은 “저는 일할 때 한 가지밖에 집중을 못하고,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표현하고, 하나에 푹 빠지는 스타일이다. 다만, 그래서 나머지를 잘 신경 쓰지 못하는 점이 부족한 점 같다”고 설명했다.
‘선택과 집중’을 말하는 박보검에게서 남자다운 매력이 풍겼다. 자신의 부족함을 덧붙여 말하는 것을 보고 또 한 번 겸손함을 느꼈다. 사실 박보검 정도의 인기라면 태도나 마음가짐이 변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박보검은 팬사인회와 세부 방문 때 이전과 달라진 자신의 위치와 인기의 무거움을 실감했다. 수많은 인파가 몰려 원치 않는 사고와 오해가 발행했기 때문이다.
그때 박보검은 자신의 손동작, 말 하나에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수도, 오해를 살 수도, 사고가 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자신으로 인해 공항이 마비되고 왜 이쪽은 안 봐주니, 내 손은 안 잡아주니 오해를 살 만한 행동이 많아지니 더 이상 어떤 행동도 못하겠더란다. 팬들에게 어떤 식으로 보답해야할지 고민이 깊어졌다.
“양날의 검 같아요. 팬들의 사랑 덕분에 제가 여기 있는 건데, 이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지만 하게 되면 사고가 생길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요. 그래서 조심스러워지고, 이제 지하철도 탈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보검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감사하다’다. 박보검은 “제가 항상 감사하다고 말씀드리는데, 만족하면 감사하면 행복이 찾아오는 것 같다. ‘보검매직’이라는 말도 감사하다. (대중들이) 그렇게 말씀해주심으로써 저도 더 반성하게 되는 것도 있고 마음도 다잡게 된다”고 깊은 속내를 보였다.
“제 얼굴에 뾰루지가 나면 코디 분들은 물광 화장을 해주고, 카메라 감독님은 트러블이 없는 쪽으로 카메라를 잡아주고, 조명 감독님은 조명의 위치를 신경써주세요. 그걸 보고 인터뷰할 때 꼭 말해야지 했던 게 있어요. 저는 스태프들이 다시 또 한 번 일하고 싶은, 따뜻한 바람막이가 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소희 기자 lshsh324@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