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컴퓨터 전문가인 김문주 박사가 한국의 슈퍼컴퓨터 정책에 쓴소리를 했다. 그는 IBM에서 30년간 몸담고 일하며 슈퍼컴퓨터 개발에 핵심 역할을 했다. 슈퍼컴퓨터와 관련한 수백건 발명과 특허 등을 개발한 인물이다. 2009년 IBM 퇴임 당시에는 `수석발명가`라는 호칭을 받았다. 수석발명가는 IBM에서 최고 개발자에게 붙여준다. 김 박사가 두 번째로 얻었다.
김 박사는 “한국에 알파고 이후 인공지능(AI) 열풍이 불고 있는데, 이미 미국에서는 AI가 체스를 이겨 충격을 받은 지 오래”라며 “AI는 슈퍼컴퓨터 없이는 구현할 수가 없는데, 한국이 개발하겠다는 AI 소프트웨어만 갖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지적했다.
구글이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것은 `슈퍼컴퓨터`란 뜻이다. 실제로 구글은 지난해 AI로 쓰기 위해 여러 CPU를 하나의 칩에다 패키징한 `텐서프로세싱유닛(TPU)` 칩세트를 공개했다. 구글은 CPU, GPU, FPGA를 하나의 칩에다 넣고 멀티 패키징을 했다. 구글은 `스트리트뷰`라는 슈퍼컴퓨터도 자체적으로 만들었다.
김 박사는 “AI를 구현하려면 하드웨어는 당연히 같이 개발돼야 한다”며 “한국 프로젝트는 한국적인 슈퍼컴퓨터 플랫폼을 만들어 핵심(Core) 기술을 개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외국 컴퓨터를 몇 대 사오려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과 IBM의 슈퍼컴퓨터 개발 프로젝트(2006~2008년, 863프로그램)에 핵심 멤버로 참여했다. 그러다 미국 정부가 핵심 기술을 유출해선 안 된다고 막았고, IBM은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중국은 단 10년 만에 93PF(페타플롭)의 선웨이 타이후라이트(Sunway TaihuLight)를 개발해 IBM을 뛰어넘었다. 중국은 멀티코어 CPU도 자체 개발해서 인텔 기술을 뛰어 넘으려 하고 있다.
슈퍼컴퓨터는 실생활에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 일례로 `의료 혁신`이다. 그는 “현재 위, 담낭 등의 사이즈를 엑스레이로 정확히 측정하기 어렵고 슈퍼컴퓨터로 구현하려면 10~11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이를 1분 안에 할 수 있으면 개인 맞춤형 의료가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슈퍼컴퓨터 개발 기술 수준은 0.1PF으로 매운 낮은 수준이다. 미래부는 10년간 1000억원을 들여 슈퍼컴퓨터를 개발한다고 지난 4월 밝혔다.
김 박사는 “슈퍼컴퓨터 공통 플랫폼(Common Platform)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면서 “집을 지을 때 상세한 청사진이 있는 것처럼 한국적인 플랫폼을 우선 만들고 필요한 부가 기능은 API로 연결하면 자연적으로 기술 산업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디지털 시스템을 뛰어넘어 빅데이터, AI에서 쓸 수 있는 슈퍼컴퓨터 특허를 갖고 있다. 필요시 조국인 한국에 기부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김 박사는 “이 플랫폼을 만드는 핵심기술인 인 하이브리드 멀티코어(hybrid multicore), 반뉴먼 아키텍처(Van Neuman Architecture) 개선, 여러 IO와 네트워크 방법 특허를 갖고 있으니 한국에 기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IBM에서 CPU, 메모리, 스토리지를 각 5년씩 배웠고 슈퍼컴퓨터를 개발하는 데 꼬박 17년이 걸렸다.
한국 정부가 정책 방향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인재를 놓치고 있는 사이 2020년에 세계 최대 슈퍼컴퓨터를 개발하겠다고 밝힌 중국에서는 그에게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송혜영기자 hybri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