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세계 경제는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선진국들이 침체에서 벗어날 모멘텀을 확보할지에 달려 있다. 턴어라운드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지만 반등을 위한 바닥을 다지는 한 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선진국이 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가운데 일부 신흥국을 중심으로 완만한 성장세를 이어 갈 것으로 보인다. 세계 경제 성장률은 올해와 비슷한 2% 후반에서 3% 초반대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몇 가지 요인이 내년 글로벌 경제 회복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금리 인상 재개, 영국의 브렉시트(EU 탈퇴) 협상 본격화, 미국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중국의 과잉설비 구조조정 등이 대표 걸림돌로 지적된다.
그러나 인도와 러시아 등 신흥국의 경기 정상화는 선진국 침체에 따른 글로벌 경기 부진을 일부분 상쇄할 것으로 보인다. 신흥국은 최근 신용 위험 우려→자금 이탈→환율 상승→인플레이션→금리 인상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었다. 내년에는 신용 위험 완화, 환율 하락, 물가 안정 등에 힘입어 경기와 구매력이 되살아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세계 최대 경제 대국 미국은 글로벌 경제의 이정표다. 미국은 고용 확대 여력이 없어 내년에도 성장세가 저하되면서 경기 침체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소비 기반 안정화 강화로 디플레이션 잠재 위험성은 다소 해소될 전망이다. 내년의 미국 경제에서 가장 큰 변수는 8일(현지시간)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 결과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 경제정책 기조가 계승된다. 또 연준 독립성이 보장돼 불확실성이 해소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당선되면 경제정책 변화 및 연준 독립성 훼손으로 실물과 금융 불안정성이 우려된다.
불황에 대처하는 방법에도 차이가 있다. 민주당은 경기가 악화되면 정부 지출 확대에 집중한다. 힐러리 공약 가운데에는 `인프라 확충`과 관련된 것이 있다. 공화당은 불황 시 소비 심리 증진을 위해 세금 감면책에 중점을 둔다. 세금 삭감을 공약으로 들고 나온 트럼프도 방향이 같다. 두 후보가 비슷한 점도 있다. 두 후보 모두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확대 공약을 내세우는 등 경제 성장에 긍정 요인도 있다.
유럽은 내년 글로벌 경제에 가장 리스크가 큰 지역이다. 정치·사회 불확실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짙다. 최근 브렉시트 가결에서 보듯 경기 부진 장기화, 난민 및 테러 문제 등으로 각국의 극우 정당 지지율이 높아지는 등 자국 중심주의가 심화되고 있다. 내년에 예정된 유로존의 각국 선거 및 브렉시트 협상을 전후로 보수화 경향이 표출될 것으로 보인다. 취약국 지원을 둘러싼 갈등이 커지고 탈EU 움직임이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추가 이탈국이 생긴다면 EU 및 유로존 붕괴 등 시스템 위기로 확대될 수 있다.
정치·사회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대내외 투자가 위축되고 소비 심리도 저하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영국은 내년 EU 탈퇴 과정에서 파운드화 약세 등 금융 불안이 수시로 재현되고 외국인 직접투자 위축, 부동산 경기 하락으로 성장세가 급격히 꺾일 것으로 예상된다. EU 국가들의 세계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인 점을 감안하면 유럽 불확실성 확대와 경제성장률 둔화는 유럽 수출 비중이 높은 국가에 타격을 줄 가능성이 짙다.
일본 경제의 어려움은 내년에도 지속될 전망이다. LG경제연구원은 일본이 수년 동안 아베노믹스 부양책에도 경기 회복의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엔저에도 수출이 늘지 않았으며, 기업 수익 개선이 투자 확대나 충분한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올해 들어서는 물가상승률도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아베노믹스의 주요 성과인 엔화 약세도 멈춘 상황이다. 엔화는 올해 브렉시트로 인한 금융 불안과 미국 금리 인상 지연으로 크게 절상됐다. 앞으로 일본 중앙은행이 추가 통화 완화에 나서면서 엔화 약세를 유도하겠지만 약발이 먹힐지는 의문이다. 글로벌 금융 불안 국면마다 엔고 현상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엔화 강세는 일본 기업의 수출 전략에 차질을 주고 기업 수익성을 떨어뜨린다. 결국 임금 상승과 소비 증가로 이어지는 흐름이 차단된다. 재정 확장 정책을 지속하겠지만 재정 건전성 부담 때문에 적극 나서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중국은 기업설비 투자와 공업 생산 증가가 지체되면서 경기를 압박하고 있다. 내년에도 기업 실적 부진으로 임금 상승 속도가 저하되면서 소비 여력은 크게 늘어나기 어려울 전망이다.
미국에 버금갈 정도로 G2로 떠오른 중국의 경제도 관심이다. 중국 당국은 경제 경착륙을 막기 위해 재정 지출 및 인프라 투자 확대를 내년에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주도의 인프라 투자에 힘입어 중국 경제는 경착륙보다 완만한 성장세의 저하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재정 지출을 늘리는 과정에서 구조조정이 지연될 것으로 보여 경착륙 우려는 여전하다. 기업 부채의 빠른 확대도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13억 인구의 대국 인도는 중국 부진을 대체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에도 인도는 외국인 투자가 이끄는 성장세가 예상된다. 모디노믹스 개혁의 3대 핵심 법안 가운데 하나인 단일부가가치세(GST) 통과와 투자 규제 완화로 개혁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공무원 임금 인상 및 연금 확대 정책도 소비에 긍정 요인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저유가를 통한 구매력 확대 효과가 줄면서 성장률은 올해보다 다소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 부양을 위한 정부 지출 확대로 재정 적자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지난해처럼 외국인 자금이 이탈, 금융 불안이 확대될 위험도 있다.
내년 세계 경제의 가장 큰 딜레마는 경기 회복을 이끌 만한 국가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예상되고 유럽과 일본은 마이너스 금리 부작용이 우려돼 통화정책을 동원한 대응도 마땅치 않다. 제조업 제품의 수요 부진과 공급 과잉 조정으로 제조업 비중이 계속 낮아지고 세계 교역의 둔화 추세도 이어질 전망이다. 무역 제재 등 보호무역주의의 확산도 국가 간 교역을 더욱 위축시키는 요인이다.
저성장이 고착돼 잠재 수요가 부진해질 것이기 때문에 기업 투자도 뚜렷이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경기 부진에 따른 석유 수요 둔화와 셰일오일의 생산 단가 하락으로 국제유가는 배럴당 40달러대 후반 수준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국의 경기 부진으로 국제 금융 시장의 변동성도 확대될 것으로 보여 달러화는 주요국 통화 대비 소폭 강세로 돌아설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