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우리나라 주력 수출품의 하나지만 대미 수출 규모는 크지 않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반도체 수출액에서 미국이 차지한 비중은 5%에 그쳤으며, 디스플레이는 1%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국내 부품 업계의 주 수요처가 미국 정보기술(IT) 기업이고 미국이 전 세계 IT 제품의 주 소비 시장이어서 미치는 직간접 영향은 적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국내 반도체 산업에 긍정이란 평가다. 중국 반도체 굴기에 대한 견제 강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이미 지난해 중국 칭화유니그룹의 마이크론 인수를 무산시켰고, 올해 초 샌디스크 우회 인수도 막은 바 있다. 자국 산업 보호를 강조하는 트럼프 시대를 맞아 중국이 미국 반도체 기업을 인수하거나 기술 협력을 맺는 일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이세철 NH투자증권 연구원은 14일 “트럼프 당선으로 중국 반도체 산업의 미국 진입 속도는 늦춰질 전망”이라면서 “중국이 미국 반도체 기업을 인수합병(M&A)하거나 기술 협력 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희박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디스플레이 산업에 미칠 영향은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주요 IT 기업의 한국 디스플레이 의존도가 높고, 우리나라 기업이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전방산업, 즉 완제품에 달렸다. 트럼프는 보호무역 정책의 일환으로 중국에서 생산돼 미국으로 수입되는 제품에 45%에 이르는 높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멕시코 생산품에 대한 관세 부과도 공약으로 내걸었다.
스마트폰, TV, 노트북 등이 대부분 미국 외 나라에서 생산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들 제품에 대한 관세 부가는 원가 상승을 일으키고, 이는 수요 감소로 이어져서 국내 부품 산업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 예로 중국에서 생산된 애플 아이폰이 비싸지게 되면 삼성이나 LG가 공급해 온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양은 줄게 된다.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실제 정책 시행에서는 보호무역을 완화시킬 가능성이 있는 만큼 지나치게 비관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극단의 보호무역주의는 미국 IT 기업의 이익률 하락과 수요 부진을 불러와 미국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극단 정책은 실제로 시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짙다”고 전망했다.
윤건일 전자/부품 전문기자 benyun@etnews.com,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