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핀 궤도 현상, 스핀트로닉스는 메모리 반도체 패러다임을 바꿀 혁신적인 기술로 꼽힌다. 전자 흐름이 아닌 전자 회전과 방향을 이용한다. 이를 정보 저장에 활용하면 고집적·저전력 비휘발성 메모리를 만들 수 있다. 캐시 메모리에 적용하면 부팅이 필요 없는 `인스턴트 온`이 가능하다.
관건은 소재다. 스핀 궤도 현상은 비교적 최근에 발견됐다. 자성체와 비자성체를 조합해 구현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적 조합은 여전히 탐구 대상이다. 두 물질 사이의 계면도 변수다. 최적 조합을 찾아 상용화하면 차세대 반도체인 자성메모리(MRAM)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반도체 강국이면서도 기초 소재 산업이 취약했다. 이번에는 다르다. 원천 소재부터 직접 연구한다. 미래소재디스커버리 사업 스핀궤도소재연구단(단장 김영근 고려대 교수)이 지난해 말 출범했다.
다행히 이 분야 연구는 우리나라 학자들이 선도하고 있다. 연구단도 최근 이리듐망간 합금을 이용한 스핀궤도소재를 개발하는 성과를 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세계 수준 수요 기업도 있다. 꾸준하고 안정적인 연구가 뒷받침되면 또 한 번 `반도체 퀀텀점프`가 가능하다.
김영근 스핀궤도소재연구단장은 원천 소재 연구부터 산업 현장 적용까지 `중단 없는 달리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 `바통터치 프로그램`, 미국 `MGI(Materials Genome Initiative)`를 예로 들었다. 축적된 연구 성과를 활용하면 소재 상용화 시간을 단축하는 것은 물론 성공률도 높일 수 있다.
김 단장은 “오바마 정부가 주창한 MGI는 발견, 연구부터 적용까지 수십 년이 걸리던 기존 소재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전략”이라면서 “고전적 소재 연구를 탈피하고 컴퓨터 계산과학, 새로운 실험 기법, 빅데이터를 도입해 이 시간을 절반으로 단축하겠다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론, 실험, 데이터 분석 등 학제 별로 분절됐던 과정을 융합해야만 가능한 모델이다. 연구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세부 연구 성과를 유기적으로 이어받는 것도 중요하다. 김 단장이 중단 없는 연구를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온고지신` 정신도 강조했다.
김 단장은 “소재가 어느 날 갑자기 발견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많은 경험과 노하우, 기존 연구 성과의 축적이 필요하다”면서 “과거의 연구 성과, 특히 실험 데이터를 언제든 찾아 쓸 수 있도록 한 해외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안정적으로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 데이터와 성과가 축적될 수 있는 체계가 갖춰져야 미래 소재 개발이 성공한다는 얘기다.
그는 “소재 연구는 당장의 성과를 독촉하는 것보다 예정된 투자를 지키고 이어나가는 게 중요하다”면서 “스핀궤도소재는 중국 반도체 굴기를 따돌릴 무기인 만큼 반드시 산업화 성과를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