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 리모택시 등 스타트업이 폐업하고 사실상 사업을 접는 사례가 늘면서 이를 실패가 아닌 사회 자산으로 삼고 재도전 기회를 열어젖혀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수익 모델 부재로 인해 폐업 가능성이 엿보이는 기업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혹한기` 준비하는 스타트업, 비용 줄이고 수익모델 추가하고=최근 창업계에서 수익 모델 부재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기업이 직원을 줄이거나 복지 혜택을 축소하는 등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나라 창업은 기술 창업이 해외에 비해 매우 낮다. 창조경제 정책 추진 이후 소프트웨어(SW) 스타트업 창업은 활발하지만 창업 이후 경쟁력이 낮아 폐업률도 높다. 또 현재 창업 지원 정책이 기술과 경험이 대체로 부족한 청년층에 편중된 것도 높은 폐업률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내수경기 위축 등 내년 경제 전망이 밝지 않은 상황에서 창업 초기기업들은 고정비용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인건비와 건물임대료 등을 최소화하고 신규 서비스를 추가하는 등 수익 모델 발굴에 주력하고 있다.
국내 대표 스타트업인 쿠팡, 배달의민족, 야놀자 등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까지 거액의 마케팅비를 쓰면서 생긴 적자 등을 줄이기 위해 올 한 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였다.
온·오프라인연계(O2O) 서비스가 우후죽순 늘던 시기에는 사용자만 모이면 광고, 사업 제휴 등으로 자연스레 수익이 발생할 것으로 여겨지던 분위기도 사라졌다. 콘텐츠 분야 투자를 선도하던 멀티채널네트워크(MCN)의 수익 모델 부재, 유사 서비스 난립으로 투자 분위기가 한풀 꺾인 것도 영향을 미쳤다.
상반기에 벤처캐피털(VC)을 대상으로 시리즈A 규모 투자 유치에 나선 모바일게임사 관계자는 “모바일,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투자를 상대하는 VC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면서 “이미 투자받은 기업들의 성과가 좋지 않으면서 보수 입장으로 투자를 검토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고 현실을 전했다.
국내 창업 환경 특성상 인수합병(M&A) 등을 통한 출구 전략도 여의치 않기 때문에 수익 모델 부재나 다음 라운드 투자 유치 실패는 자칫 폐업으로 돌아간다.
이와 더불어 `연대보증의무`는 사라졌지만 사회 분위기상 창업 실패가 낙인으로 될 가능성이 짙다. 창업계는 청년 창업가가 `빚더미`에 오르지 않도록 창업가나 스타트업 임직원이 재도전을 쉽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창업 국가 이스라엘은 사실 `실패 국가`=창업 국가로 불리는 이스라엘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창업 실패를 가장 많이 한 국가`다.
KOTRA 텔아비브 무역관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창업, 투자, M&A 등에서 세계 1위 수준이지만 창업 성공률은 높지 않다.
이스라엘하이테크벤처캐피털(IVC) 통계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1999~2014년 15년 동안 약 1만185개 업체가 창업했다. 국민 1인당 정보기술(IT) 기업 창업 수에서는 세계 1위다.
그러나 창업한 업체 가운데 성공한 업체는 총 254개로, 약 2.5%의 성공률을 기록했다. 100개 기업이 창업하면 그 가운데 2~3개 기업만 성공한다는 의미다.
IVC에 따르면 15년 동안 스타트업 기업의 46%가 `종잣돈`을 모으는 초기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폐업하거나 평균 3.5년 이후 폐업한 것으로 집계됐다.
창업 국가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낮은 성공률이지만 이스라엘 정부와 업계는 창업을 더욱더 전폭 지원한다.
모셰 카흘론 이스라엘 재무부 장관은 다국적 기업의 이스라엘 진출과 이스라엘 창업 기획 확대를 위한 계획안을 발표했다. 계획안에 따르면 IT 기업 가운데 매출액이 100억달러 이하 대상으로 법인세 12%를 적용한다. 이는 기존 25%보다 낮은 수준이다.
또 낮은 창업 성공률에 비해 이스라엘의 투자 규모는 지속 늘어났다. 2014년 투자 유치도 지난 2000년의 최대 규모를 넘어선 34억달러를 기록했다. 688여 하이테크 기업이 전년도 대비 46%나 상승한 34억달러 규모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이스라엘 챌린지펀드의 사울 레이키만 부회장은 “이스라엘은 창업률이 많은 만큼 실패율도 높은 것이 사실”이라면서 “실패율이 높다는 것이 굳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패를 해 봐야 성공하는 법을 안다”고 강조했다.
◇창업 실패는 낙인 아닌 자산, 재도전 지원 늘려야=미국 실리콘밸리의 벤처투자가 전설로 불리는 팀 드레이퍼가 세운 창업사관학교 `드레이퍼대학`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나는 성공할 때까지 실패하고 또 실패할 것이다(I will fail and fail again until I succeed)`라는 문장이다.
도전에 앞서 실패에 따른 두려움을 극복하고, 실패하더라도 끊임없이 재도전하라는 격려를 담았다. 실제 우리나라 30~40대 장년층 창업자를 비롯한 경력 창업자에게도 창업 때 가장 어려운 요소로 `실패로 인한 두려움`을 꼽는다.
창업계 관계자들은 창업, 사업화, 투자 유치, M&A 등을 경험해 본 창업 경험자가 다시 창업을 시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창업 생태계라고 입을 모은다.
SW정책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경력자가 비경력자 스타트업에 비해 빠르게 성장하며, 창업 이전 경력이 스타트업 성공 확률을 높인다는 기존의 연구를 뒷받침했다. 비경력자 스타트업이 단계별로 7.9개월이 걸린 것에 비해 경력자 스타트업은 6.4개월로 빠른 성장을 보였다.
최윤경 매쉬업엔젤스 팀장은 “현재 50여개 스타트업 포트폴리오에서 과거 창업을 경험한 이가 절반”이라면서 “이들 스타트업은 성장세도 높고 더욱 적극성이 강하다”라고 말했다.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KAIST 교수)은 “창업 기업 가운데 절반 이상은 문을 닫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면서 “이를 재도전할 수 있도록 빠르게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2조원 창업 지원 예산 가운데 재창업자 지원 예산은 650억원 수준”이라면서 “이를 좀 더 늘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명희 기업/정책 전문기자 noprin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