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자료 오류에도 법적 책임은 없다는 정부

[기자수첩]자료 오류에도 법적 책임은 없다는 정부

“보도자료는 법적으로 아무런 효력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부가 발표한 자료의 오류를 지적하자 공무원으로부터 돌아온 답이다. 해당 자료는 산업통상자원부가 냈고, 관세와 관련해 기획재정부 공무원과 통화하면서 들은 내용이다.

정부는 지난달 30일 `834개 정보기술제품 관세 인하` 보도자료를 내고 이달부터 반도체 제조 장비, 정보기술(IT) 소재, 광학영상기기, 헤드폰, MP3플레이어 등 834개 품목의 관세를 철폐 또는 인하한다고 밝혔다.

이번 변화는 정보기술협정확대(ITA) 이행과 관련해 `세계무역기구 협정 등에 의한 양허관세규정` 개정에 따른 것이다. 품목별로 관세가 3, 5, 7년 등 단계별 또는 즉시 철폐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규정에는 `헤드폰이나 MP3플레이어 등 일반 수입 소비제품의 가격도 인하돼 소비자의 후생도 증가될 것으로 예상됨`이라고 명시했다.

국내 음향 기업뿐만 아니라 외산 음향기기 업체까지 정부 발표에 따라 각자의 득실을 따지기 시작했다. 국내 기업은 당장 받을 타격을 걱정했고, 해외 사업 현황을 찾아 살폈다. 외산 기업은 급하게 가격 조정 등 회의에 들어갔다.

[기자수첩]자료 오류에도 법적 책임은 없다는 정부
[기자수첩]자료 오류에도 법적 책임은 없다는 정부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헤드폰, 이어폰, 스피커 등 음향기기는 즉시 철폐 대상이 아닌 장기 철폐 품목이다. 현재 적용되고 있는 8% 관세와 다를 것이 없었다. 실제로 8%보다 낮은 세율이 적용되는 시점은 2020년이다.

기자는 담당 공무원에게 현재 기업들이 해당 보도자료 때문에 잘못된 사실을 공유하고 있으니 수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자신들이 해당 부분은 잘못 기입했다면서도 “보도자료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며 말끝을 흐렸다.

해당 자료는 고쳐졌다. 그러나 수정 여부는 담당 공무원만 알고 있다. 이미 작성한 보도자료를 고치기만 했을 뿐 이에 대한 별도의 정보는 어디에도 없다. 수정이라는 단어도 없었으며, 고지하지도 않았다. 처음 배포한 보도자료 원문을 슬쩍 바꾸는 데 그쳤다.

신뢰는 쌓기 어렵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올해 초에 개정된 공무원 윤리 헌장 첫 번째 본문에는 `맡은 바 책임을 다한다`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왜 윤리 헌장에 `책임`이 들어갔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전자자동차산업부·

정영일기자 jung0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