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출연연 `남 탓 프레임`

[데스크라인] 출연연 `남 탓 프레임`

소 없는 만두를 씹는 기분이랄까. 밋밋하고 심심하다.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이 최근 발표한 혁신안을 접한 솔직한 느낌이다.

출연연은 지난 4개월 동안 산통을 겪었다. 아래로부터 개혁이라는 `자발 혁신` 담론을 놓고 씨름했다. 새로운 것을 도모하겠다면 책임이 따르는 법. 그래서 이번에는 뭔가 제대로 된 변화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잔뜩 부푼 풍선이 터지듯 기대감은 허망하게 날아갔다.

자발 혁신안의 골자는 △국가 현안 연구 강화 △도전·혁신 연구 주제 발굴 △출연연 간 벽을 허문 융합·개방형 연구 추진 등이다. 10년 후 먹거리를 찾을 프런티어형 연구와 사회 현안 솔루션 연구에 초점을 맞췄다. 출연연별 연구 책임 전문가 발탁, 공동 연구센터 설립, 무정년 석좌연구제도 도입 등 세부 실행 방안도 담겼다.

이런 내용은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들이다. 올 상반기의 대통령 주재 국가과학기술전략회의에서 발표된 내용과도 흡사하다. 기업과 대학이 못하는 선도 부문의 연구에 집중하겠다는 각오는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에서도 여러 번 나왔다. 재탕, 삼탕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사실 출연연이 스스로 혁신안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과학계 안팎에서는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다는 격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결국 흐지부지될 것이라고 장담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출연연이 과연 통렬한 자기반성을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을 드러냈다. 혁신의 전제 조건조차 갖추지 못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결국 이들의 우려처럼 출연연의 혁신안에는 감동이 없었다. 철저한 자기반성이 빠졌다.

출연연이 자기반성에 인색한 이유는 `남 탓 프레임`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출연연은 그동안 연구개발(R&D) 실적이 저조한 원인을 자신보다 외부에서 찾아 왔다. 정부와 정치권의 지나친 간섭, 이중·삼중의 평가제도, 임금 벌기에만 급급한 성과주의예산제도(PBS), 옥상옥의 거버넌스 구조 등 하나같이 출연연 밖에서 원인을 찾았다. `남 탓 프레임`은 `자율 프레임`으로 발전했다. 출연연을 `가만 놔두면 우리끼리 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혁신안에서도 자율성을 한 번 더 강조했다.

`남 탓 프레임`이 틀린 것은 아니다. 현재 출연연 문제의 상당수는 잘못된 제도와 거버넌스 구조에서 기인한다. 그런데 자율성을 속박하는 방식으로 정책이 만들어진 원인이 무엇인지 진지한 통찰이 필요하다. 애당초 출연연의 성과가 좋았다면 굳이 정부에서 간섭이나 개입을 했을까. 현재 자율성을 침해하는 이중·삼중의 평가제도가 나온 근본 이유는 무엇인가. 결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결과의 폐해만 비판하는 것은 병의 원인은 제쳐 두고 잘못된 처방만 비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래선 병을 고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 차례에 걸친 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국민은 납득하지 못했다. 오히려 반감이 커졌다. 가장 큰 실수는 `남 탓 프레임`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출연연의 혁신에도 국민의 피로감이 쌓이고 있다. R&D 성과 저조가 세금 낭비 여론으로 옮겨 붙으면 걷잡을 수 없는 회오리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출연연의 존립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시간이 많지 않다. 언제까지 `남 탓`만 하다가 끝날 순 없지 않은가.

장지영 미래산업부 데스크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