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미래창조과학부 주최로 2017년 국가 연구개발(R&D) 신(新)투자모델 토론회가 진행됐다. 총 4개 분야로 진행된 토론회 가운데 `재난안전 연구개발 협업 체계 개선 방안` 발제에 유독 청중의 이목이 집중됐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라는 범 국가 재앙이 발생한 이후 안전에 대한 국민의 수요와 과학기술 대응의 필요성이 급증했다. 정부는 `재난안전 R&D 예산` 카테고리를 추가 설정했고, 범 부처 재난안전 R&D 계획, 재난안전 R&D 투자 강화 지침들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재난안전 R&D 예산을 지속 확대시켰다. 그 결과 2017년도 재난안전 R&D 예산안은 약 8000억원으로 2014년 대비 50%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여전히 재난안전 기술 실용화는 더디고, 국민 안전 사회는 멀게만 느껴진다.
무엇이 문제일까. 발제자인 조남준 미래부 공공에너지조정과장은 기존의 재난안전 R&D 체계에서 원인을 찾았다.
재난 특성상 9월 12일 경주 지진과 같은 대형 재난이 발생하면 특정 이슈에 국민들의 우려와 관심이 집중된다. 해당 정부 부처들은 특정 재난에 각기 다른 대책과 정책을 수립, 현안 분야 R&D 추진에 몰려든다. 이러한 과정은 특정 재난 분야에 R&D 투자 쏠림 현상을 발생시키고, 부처 간 역할 경계를 무너뜨린다.
재난은 광범위한 파급성으로 인해 한 종류의 재난에도 다수의 정부 부처가 연관돼 있다. 이에 따라서 한 분야의 R&D 추진을 위해 다수 부처 간의 협의는 필수며, 이는 재난안전 R&D 정책의 신속한 실현을 저해한다.
마지막으로 재난안전 R&D와 재난 현장에서 필요한 기술 간의 괴리다. R&D로 개발된 기술이 막상 현장에서 활용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토론회에서는 이런 재난안전 R&D 체계개선을 위해 크게 세 가지 재난안전 R&D `협력 모델`이 제시됐다. 이들 세 가지 모델의 공통 기조는 부처 간, 현장 대원과 R&D 인력 간 `협력`이다.
첫 번째로 제시된 역할분담형 모델은 긴급 현안에 대해 관련 부처 간 유사·중복 분야는 공동 개발하고, 각 부처의 고유 분야는 개별 추진해 공동 사업 성과와 연계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최근 이슈화된 지진 R&D는 각 부처 공동으로 단층·지질·지각 조사를 실시하고, 공동 연구된 성과는 해당 부처의 소관 분야에 맞는 연구로 개별 활용 및 진행하는 방식이다.
두 번째로 공동기획형 모델이 제시됐다. 부처 간 협의가 필요한 유망 분야지만 부처의 자발 참여가 저조한 현안에 대해 예산 결정력이 있는 기관이 참여해 부처 간 협의체를 구성, 부처 간 협력과 공동 기획을 유도하는 모델이다. 대표 사례로 기상 영향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2차 피해를 위험도로 예보하는 `영향예보`가 있다. 영향예보는 기상청이 주도해 기획하고 있지만 다수 부처의 재해 영향 모델 및 소관 분야와 연계 개발 필요성이 있어서 공동기획형 협력 모델 적용이 적합한 분야다.
마지막으로 현장-개발소통형 모델이 제시됐다. 기술 활용 부처와 개발 부처가 상이한 경우에 적용, 기획-진행-완료 단계에서 현장대원-연구자 협의 절차를 제도화하는 모델이다. 리빙랩으로 대표되는 소방 구조 장비 개발 자문 체계의 경우 재난 현장 대원들을 자문단으로 구성하고 운영, 필요 기술을 도출하고 개발 단계별로 표준화된 자문 체계를 수립하게 된다.
제3차 과학기술기본계획의 국가전략기술 개발 전략에서도 걱정 없는 안전 사회 실현을 위해 현장·실용화 중심 재난안전기술을 개발하고, 단기에 시장을 창출해야 한다고 진단한 바 있다. 이에 따라서 장기 시각으로 재난안전 R&D 투자 효율화를 위해 재난안전 R&D가 현장 기술로 이어지는 협력형 재난안전 R&D 생태계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이를 위해 이번 토론회에서 제안된 재난안전 협력 모델과 상위 재난안전 R&D 종합계획 간 연계 방안을 마련하고, R&D 예산을 투자 방향에 반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2015년 세계과학정상회의에서 라이문트 노이게바우어 독일 프라운호퍼협회 총재는 `먼 미래가 아닌 현실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R&D`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재난안전기술 분야는 이론 연구보다 현장에 바로 적용·활용돼 국민안전 확보로 이어져야 하는 기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재난안전기술 R&D가 바로 이러한 주장에 가장 적합한 분야가 아닐까. 이제는 재난안전 R&D 문제해결 방안과 정책이 재난 현장에서 실현되기 위해 협력하고 실행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심규철 국가과학기술심의회 공공우주전문위원·이비티 스마트재난안전연구소 소장, skcpj@enjoyb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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