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 <50> 디테일 다루기

[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 <50> 디테일 다루기

26일 경신일 맑았다. 일찍 아침을 먹고 둔전에 나갔다. 둔전에서 수확한 벼를 창고에 들이며 다시 따져 보니 실상 167섬밖에 되지 않았다. 48섬이 줄어든 셈이다. 6일 계유일 비가 왔다. 오수가 청어 1310두름, 박춘양이 787두름을 바쳤다. 황득중은 202두름을 바쳤다. 12일 임인일 맑았다. 남해 원 박대남이 조문 편지와 함께 여러 물품을 보내왔다. 쌀 2섬, 참기름 2되, 꿀 5되, 조 1섬, 미역 2동이다.

2005년 알파헬스는 영국 제약 기업 파마팀을 인수한다. 기업은 크지 않았지만 제품 포트폴리오는 훌륭했다. 재무 상태도 흠잡을 것이 없었다. 시장 전략과도 맞았다. 영국 시장을 여는 통로가 되리라 했다. 성공 합병으로 평가된다.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불거진다. 합병 후 2주 쯤 지났을까. 업무 시간에 넥타이를 매지 않아도 된다는 지침이 전달된다. 두 기업의 문화를 맞추자고 한다. 일부 직원이 거부한다. “영국에서 이건 직업의식 같은 것입니다. 놀러 오지 않았다는 의미이자 직장과 개인 생활의 구분이기도 합니다.”

이 와중에 알파헬스는 또 다른 변화를 준다. 사무실 벽을 푸른색에서 알파헬스 상징색인 붉은색으로 바꾼다. 넥타이 착용자가 더 늘어 간다. 회사 카페테리아가 한쪽은 넥타이, 다른 쪽은 노타이 그룹으로 나뉜다. 여직원까지 동참한다. 넥타이 나눠 주기 운동마저 벌어진다. 2년 후 파마팀은 스핀오프를 하고 경영권을 다시 인수한다.

사소한 사건이 차이를 만든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1986년 챌린저호 추진로켓 연결부를 막은 오링(O-ring)에 그슬린 자국이 발견된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가스 누출`은 수용 가능한 위험으로 분류된다. 문제가 없는 것으로 처리된다. 챌린저호는 발사 후 1분 만에 폭발한다. 결국 오링이 문제였음이 밝혀진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영국 런던대 경영대학원(런던비즈니스스쿨)의 프레이크 페르묄런 교수는 묻는다. 사소한 선택이 결과를 바꿀 수 있을까. 한 가지 시험을 해봤다. 일단의 시험 참가자에게는 “거짓말을 하지 마라”고 주문한다. 다른 집단에는 “거짓말쟁이가 되지 마라”고 한다. 시험이 끝나고 두 집단을 비교했다. 놀랍게도 두 번째 집단의 거짓말 횟수는 절반이나 적었다. 너무나도 사소해 보이는 선택. 바로 동사 대신 명사를 사용한 차이였다. 동사가 행동을 말할 때 명사는 자신의 모습, 자아상과 정체성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 파마팀 직원을 인터뷰했다. 당시의 느낌을 물었다. 반대한 이유는 단순했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팝에 들러 넥타이를 푸는 것은 작은 기쁨이었습니다. 이걸 마음대로 바꾸려고 하더군요.”

조수아 갠스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에게는 전혀 다른 사례도 있다. 디즈니월드에서 한 꼬마가 맨홀 뚜껑을 손으로 가리켰다. 맨홀 뚜껑을 유심히 살펴보자 가운데 네모난 돌기 한가운데에 미키마우스가 새겨져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비슷하게 생긴 물건 아니었는가. 그러나 디즈니는 다른 선택을 했다.

갠스 교수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디즈니랜드는 왜 맨홀 뚜껑에 미키마우스를 새겨 두려 했을까. 몇 백개 또는 몇 천개를 주문하든 미키마우스를 새겨 넣기 위해 얼마간의 비용이라도 더 지불했을 것이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까. 무척 눈이 밝은 꼬마가 아니라면 누가 알아챌 수 있을까.

애플도 못지않다. 컴퓨터 내부를 예쁘게 만들기 위해 온종일 회의를 한다고 생각해 보자.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을 만한 것에 왜 매달릴까. 스티브 잡스가 매달린 두 개의 `d`는 바로 디자인(design)과 디테일(detail)이었다.

충무공 이순신은 전라좌수사가 된 후 1년 2개월 동안 왜란을 준비한다. 둔전을 짓고, 군사를 모으고, 배를 짓는 과정이었다. 일기는 둔전의 수확량을 따져 기록하고, 공납 받은 청어·쌀·참기름·꿀·조·미역을 세어 기록했다.

오랜 준비 끝에 충무공은 임진왜란 하루 앞선 4월 12일 거북선에 올라 지자포와 현자포를 시험한다. 왜란을 준비하던 `큰 목표와 참기름 2되`. 디테일 다루기란 바로 이런 것인 모양이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