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미필적 고의` 그리고 `5G`

`미필적 고의`.

반드시 어떤 결과를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결과가 발생해도 어쩔 수 없다고 인지하는 심리 상태다. 발생 가능성이 없다고 확신했는데 발생한 `인식 있는 과실`, 의도한 행위인 `확정적 고의`와는 다르다. 그러나 고의성을 인정받아 확정적 고의와 비슷한 처벌을 받는다.

[전문기자 칼럼]`미필적 고의` 그리고 `5G`

산 속에서 호랑이를 발견한 포수가 호랑이 근처 동료를 발견, 자칫 동료가 총에 맞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총을 발사해 동료가 맞은 경우다. 출근 시간을 맞추려고 좁은 길을 과속으로 달리면 사고 위험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과속 주행으로 사고를 낸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표 사례가 세월호 참사다. 대법원은 2015년 11월 세월호 선장에게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선장이 `자신이 승객을 구하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미필적 고의는 법률 드라마에 간혹 등장, 일반인에게 많이 알려졌다. 형법 외 분야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빗대 표현할 때도 자주 인용된다. 통신방송 업계에도 `미필적 고의` 성격이 다분한 일이 가끔 벌어진다.

지상파 UHD 방송이 그렇다. 2014년 주파수 논란 당시 방송사는 `지상파 UHD 방송은 시기상조`라는 업계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시했다. 오직 700㎒ 주파수 확보에만 집중했다. 표준 미비에 따른 본방송 시기 지연 등 여러 문제점을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다.

결국 본방송(2월)을 얼마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방송통신위원회에 서비스 개시 일정 연기를 신청했다. 방송 장비 발주와 확보, 가전사와의 안테나 내장 논의, 표준에 따른 정합성 확보 등이 이유다.

5세대(5G) 이동통신에 대해선 우려가 더 커진다. 5G는 초연결 사회와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다. 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상용화 예상 시점은 2020년이다. 1차 국제 표준이 내년 6월에 완료된다. 칩과 장비 개발, 안정성 테스트 등을 고려한 시점이다.

각국은 이 시기를 앞당기려 한다. 조금이라도 먼저 상용화에 성공하는 게 시장 선점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 5G 상용화`라는 타이틀로 통신 기술의 우수성을 과시할 수 있다. AT&T와 버라이즌은 올해 상반기 5G 시범 테스트에 착수한다. 버라이즌은 올해 말 5G 상용화를 계획했다. 일본, 중국, 유럽연합(EU) 각국과 기업도 분주하다.

우리나라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전후로 5G 시범 서비스를 선보인다. 문제는 통신 3사가 각자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신 3사의 개발 규격은 각사의 규격일 뿐 `대한민국 5G 표준 규격`이 아니다. 대한민국 5G 표준은 정부와 사업자가 논의해 별도로 확정해야 한다.

글로벌 장비 제조사와 협력할 때, 국제 표준화 활동을 할 때도 3사가 별도 규격을 제시해서는 목소리에 힘을 실을 수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주파수(28㎓)가 5G 표준 대역이 되리란 보장도 없다. 우리가 개발한 규격이 국제 표준으로 제정되도록 지금부터라도 힘을 모아야 한다. 글로벌 기업과 공조하고 있어 3사 개발 규격이 비슷할 거라는 게 각사의 입장이다. 그러나 내년 6월에 확정될 1차 국제 표준과 국내 개발 표준에 차이가 크다면 `그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미필적 고의는 `욕심`에서 시작된다. 각사의 욕심이 자칫 5G 주도권을 상실하는 것으로 나타나면 안 된다.

안호천 통신방송 전문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