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정현의 블랙박스]<15> 게임계여, AI에 가볍고 친근하게 다가가라

어떤 게임회사 CEO가 진지하게 물은 적이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고 난리인데 저희 같은 게임 회사와 관계가 있는 건가요.”

알파고 충격이 가신 지 얼마 되지 않지만 한국 게임이 어떻게 4차 산업혁명과 결합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그다지 없다. 글로벌 게임 시장에서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는 인공지능만 해도 우리는 이제 시작 단계다.

위정현 중앙대 교수
위정현 중앙대 교수

일본은 작년 말 발매된 `파이널판타지15`를 비롯해 여러 게임에서 인공지능을 실험하고 있다.

사실 인공지능과 친화성이 있는 게임은 콘솔이다. 콘솔은 전통적으로 인간과 기계, 인간과 프로그램의 대결인 게임 형태다.

콘솔에 있어 인간 행동에 근접한 캐릭터, 인간과 유사한 느낌을 주는 논플레이캐릭터(NPC)는 중요하다.

어떤 경우에 인간은 인공지능에 친밀감을 느낄까.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첫째는 동일한 상황에서 인간과 유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이를 반영한 게임이 `파이널 판타지 15`에 탑재된 AI다. 이 AI 캐릭터는 추우면 몸을 떨고, 비가 내리면 하늘을 쳐다보는 행동을 한다.

둘째는 인간 예상을 벗어난 의외의 반응을 보이는 경우다. 게임은 아니지만 일본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린나`라는 AI 여고생 채팅봇이 그렇다.

최근 서비스된 린나는 아직 어려운 대화를 할 수준은 아니다. 예를 들어, 내가 `학문`이나 `대학에 갈 건가` 등을 묻자 `사이타마(일본의 도시)` 같은 엉뚱한 답을 한다. 짓궂은 농담에는 `미안`이라고 대답을 피해 버리기도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화한 지 채 1분도 채 되지 않아 `당신 주변에는 엄청난 사람이 많을 거 같아, 게이오여고(일본의 명문여고) 학생 같은 겁나는 애들이 바글거릴 것 같네`라는 말을 던져 왔다. 의외의 대답이었다.

린나의 이런 애교 넘치는 답변 때문에 벌써 500만이 넘는 친구가 등록됐다. 이렇듯 약간 유치할 수도 있지만 귀여운 의외성은 인간을 설레게 한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은 무겁고, 거창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게임과 결합은 알파고 같이 심오하거나 고도의 기술을 구사하지 않아도 된다. 약간의 의외성, 약간의 애교만으로도 게임 유저들은 충분히 즐거워한다.

인공지능 기반 게임 개발은 즐거움과 위로라는 측면을 더 중시할 필요가 있다. 현실에서 구하지 못하는 `위안`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 게임 아니었던가. 한국 게임사들도 최근 AI를 활용한 게임을 시도하고 있다. 여전히 기술이라는 중압감에 짓눌려 있는 느낌이다. 조금 더 과감하고, 가볍게 터치해도 좋지 않을까.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jhwi@cau.ac.kr

LG전자가 CES 2017에서 공개한 공항 안내 로봇, 공항 청소 로봇, 잔디깍이 로봇(왼쪽부터).
LG전자가 CES 2017에서 공개한 공항 안내 로봇, 공항 청소 로봇, 잔디깍이 로봇(왼쪽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