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온뉴스 유지훈 기자] 검은 소리, 블랙스(BLEX), 소울 트레인(Soul Train), 푸른 굴 양식장, 더블 쥬스(Double Juice), 가라사대, 클럽 마스터플랜. 힙합이 가요계의 대세 장르로 자리 잡은 2017년이지만 대중에겐 생소한 단어들이다.
래퍼 아이삭 스쿼브(Issac Squab)는 이 생소한 단어들과 함께 성장한 ‘힙합 1세대’다. 1998년 그룹 와일드 스타일(Wild Style)로 데뷔했으며 당시 나이는 중학교 3학년, 그리고 지금은 30대 중반이 됐다. 닥터 그루브(Dr. Groove), 무혼진, 다크루, 트래스패스(Trespass), 쇼하우, 골든보이 트레이닝 아카데미(Golden Boy Training Academy) 등 지금까지 몸을 담았던 그룹을 모두 입에 올리는 것이 버거울 정도다.
‘딜레랑트(Dilettante)’는 지난해 발매한 아이삭 스쿼브의 첫 번째 정규 앨범이다. 타이틀곡 ‘스트릿 로맨스(Street Romance)’를 비롯해 총 열한곡이 수록됐다. 음악 인생 18년 만의 첫 정규앨범인 만큼 래퍼로서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이삭은 ‘딜레랑트’를 “30대 중반에, 늙은 래퍼가 미련하게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지 알 수 있는 앨범”이라고 소개하며 웃었다.
Q. 정규 앨범 낸 후 바쁜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별거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인디 뮤지션이 다 그렇죠. 반전 같은 건 없어요. 컴백을 하니까 공연시장이 죽었네요?(웃음) 신이 없어진 느낌이에요.”
Q. 아이삭 스쿼브는 현재 힙합신에서 어떤 포지션에 있는 가?
“19년차 래퍼죠. 말도 안 되네요. 변두리에 있는 것 같아요. 홍대에 단골 많은 맛집이 있었는데, 점점 월세가 오르면서 밀려나는 거죠. 단골만 찾는 변두리 맛집이 된 겁니다.”
Q. 첫 정규 앨범을 낸 소감은?
“앨범이라는 형태 때문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많이 해서 후련해요. 그리고 할 만큼 했어요. 랩스킬이 많이 들어간 앨범은 아니에요. 제가 이런 사람이란 걸 말해서 후련합니다.”
Q. 친한 뮤지션이 많다고 알고 있는데, 피쳐링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제 생각을 공유할 아티스트가 있을까 고민했어요. 또 피쳐링을 함부로 쓰면 곡에 책임감이 없어져요. 끽해봐야 40초짜리 랩 쓰고 각자 녹음실에서 작업해서 보내고, 저는 힙합을 그렇게 접근하기 싫어요.”
Q. 앨범을 내고 가장 좋아해줬던 래퍼는 누군가?
“디제이스킵이 제일 좋아해줬어요. 그리고 메타 형이랑 프라이머리가 그랬어요. 프라이머리는 저를 집까지 불렀어요. 집이 겁나 크더라고요. 되게 오래된 친구에요. 앨범을 낸 다음에 인간관계가 더 갈린 느낌이에요.”
Q. ‘스트릿 로맨스’는 앨범에서 가장 밝은 노래이자 타이틀곡이다. 이유가 있나?
“굳이 정하라고 해서 정한 거예요. 30대 중반의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을 대변하는 노래에요. 벌스 123의 주제가 다 안 맞죠? 주제의식이 없어서 그래요.(웃음) 어느 날 가볍게 술을 먹고 홍대를 걷는데 앞에 헌팅포차에 여자들이 있어서, 같이 놀고 싶은데 나이제한 때문에 못 들어간다는 거예요.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나 왜 여기, 홍대에 서있지?’라고요.”
Q. ‘아이삭스 마인드’ ‘광화문’ 등은 사회 비판적 가사를 담았다. 이런 노래들을 하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
“할 말을 하고 싶었고, 그렇게 했을 뿐이에요. 2016년 11월, 머릿속에 있는 걸 주욱 썼어요. 화가 나 있었어요. 세월호, 백남기 농민사건, 이대총장의 뻔뻔함을 보고, 다 연결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맞았거든요.”
Q. 촛불집회에서 래퍼들과 함께 공연을 했었다.
“광화문에 캠핑촌이 있어요. 블랙리스트 발표 이후 예술인들이 릴레이로 노숙을 합니다. 저도 거기에 참여하고 싶었는데 ‘공연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연락이 온 거에요. 일이 점점 커졌고 다른 래퍼까지 섭외하게 됐어요. 힙합이란 코드를 사용해달라고 제안이 와서 메타형과 의기투합했어요. 또 불러준다면 해보고 싶어요.”
Q. ‘마이 핏’은 아이삭이 가지고 있는 음악적인 성향을 보여주는 동시에, 한국 힙합신에 대한 문제점을 꼬집는다.
“힙합 1세대로서 미안함이 있어요. 신을 확실히 못 만들어준 미안함이죠.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 거예요. 무한한 리스펙을 받는 1세대가 없는걸 보면 알아요. 우리는 힙합을 만들어서 인디에서 소비자들에게 사랑받긴 했지만, 자본 앞에 투쟁적으로 움직여서 우리만의 신을 만들지는 못했어요. 결과적으로 우리는 이기적인 사람들이었어요.”
Q. ‘이혁재의 파티왕’ ‘스타 골든벨’ 등에 출연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대중적으로도 잘나가는 래퍼 같았다. 하지만 지금 방송활동은 라디오뿐인 것 같다.
“과거의 저한테 정신 차리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지금 제가 하는 음악을 그때 하라고 충고도 같이요. 당시는 랩하는 사람이 방송 나오면 욕먹던 시절이었어요. 동료 연예인도 많아지고 그래서 건방져졌어요. 지금이야 데프콘, 딘딘, 슬리피 이런 친구들이 방송에 나오면서, 래퍼가 예능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어느 정도까지인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생겼죠.”
Q. 정규 앨범도 냈으니, 앞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칠 마음도 있을 것 같다. 다음 앨범을 기대하고 있는 팬들에게 어떤 음악을 들려주고 싶나.
“우선 CCM을 다시 하고 싶어요. D.I.J라는 밴드에 몸을 담고 있어요. 앨범 안 낸지 4년 됐으니 준비해보려고요. 지금 기독교인들이 욕먹는 시대에요. 그래서 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진보적인, 진짜 메시지가 있는 CCM을요.”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유지훈 기자 tissue@enter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