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View┃영화] ‘어라이벌’→‘컨택트’, 제목 바꾸기 ‘잘했다? 못했다?!’

출처 :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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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해외 영화가 수입ㆍ수출되면서 제목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한국영화도 해외로 나가면서 제목이 바뀐다. 일본에서는 해외 영화 제목을 주로 길게 풀어내는데, ‘특종 량첸살인기’는 ‘만들어진 살인’으로, ‘더 폰’은 ‘리바이벌: 아내는 두 번 살해당했다’로, ‘검사외전’은 ‘화려한 리벤지’, ‘오빠생각’은 ‘전장의 멜로디’ 등으로 변경되었다.

완전히 다른 인물을 지칭하는 제목으로 바뀐 것도 있다. 한국영화 ‘아가씨’는 박찬욱 감독의 뜻에 따라 영어 제목을 ‘하녀’로 정했으며, 미국에서는 ‘하녀’로, 프랑스에서는 한국처럼 ‘아가씨’로, 대만에는 '하녀의 유혹'으로 제목으로 개봉했다. 이 작품의 원작 소설 제목이 도둑과 하녀를 뜻하는 ‘핑거스미스’를 뜻하는 것도 흥미로운 요소다. ‘아가씨’는 1~3부로 나눠진 작품으로, 하녀 숙희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1부에 이어 2부는 아가씨 히데코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아가씨와 하녀 모두 주인공이지만, 1~3부에 따라 지켜볼 사람이 달라지고, 결국 관객에 따라 집중하는 인물이 달라지는 것. ‘아가씨(The Handmaiden)’라는 타이틀은 이런 두 가지 시선을 모두 담는다는 데 있어서 영리한 제목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제임스 맥어보이가 출연하고, 지난해 해외에서 개봉한 영화 ‘스플리트(split)’의 국내 개봉을 기다리던 관객들은 유의할 점이 있다. 이 영화는 오는 23일 국내 개봉하는데, 원제인 ‘스플리트’가 아닌 ‘23 아이덴티티’로 개봉하기 때문이다. ‘분열되다’라는 뜻을 가진 ‘스플리트’가 영화에 어울리는 제목이지만, 자주 사용하는 영어 단어가 아닌데다가 지난해 개봉한 한국 영화의 제목과도 겹치기 때문에 제목을 바꿔 개봉하기로 했다. 다만 지난 2003년 개봉하고, ‘23 아이덴티티’처럼 여러 정체성을 가진 인물을 다룬 영화인 ‘아이덴티티’와 헷갈리는 경우가 있다.

출처 :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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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장 많은 논란을 일으킨 것은 원제 ‘어라이벌(arrival)’에서 제목을 바꿔 개봉한 영화 ‘컨택트’다. 앞서 1997년 작품인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콘택트’라는 작품이 호평을 받고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콘택트’의 리메이크작으로 생각하는 관객도 많다. 특히 두 영화 모두 소설을 원작으로 했고, 인간에게 우호적인 외계인이 등장하고, 여성 주인공이 외계와 소통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때문에 영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는다면 헷갈릴 가능성이 높다.

이에 잘못된 마케팅 수단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오해’를 부르는 마케팅은 장ㆍ단점을 가지고 있다. 기존 작품을 좋아했던 팬들이 리메이크작인줄 알고 보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리메이크작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관객은 영화 보기를 거부한다.

‘컨택트’ 측은 “조금 더 쉽게 바로 직관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직관적인 어필을 원했다면 아예 한국어로도 바꿀 수 있는 상황, 이에 영화 팬들은 한국어도 아닌 또 다른 영어 단어로 바꾼 것에 대해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만약 드니 빌뇌브 감독이 ‘컨택트’라는 단어가 더 맞다고 생각했다면, 직접 그 제목을 붙였을 것이다. 그가 ‘컨택트’가 아닌 ‘어라이벌’을 선택한 이유가 분명 있을 테지만, 한국 배급사는 이 영화에 ‘컨택트’라는 제목을 붙여 줬다.

제목 자체를 뜯어보면, 영화 내용이 외계와 접촉을 한 후 소통을 하는 이야기를 다뤘기기 때문에 ‘컨택트’가 정확한 표현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1차원적인 시선에 불과하다.

두 가지 뜻을 가진 원제 ‘어라이벌’은 이 영화에 더 알맞은 표현으로 보인다. ‘어라이벌’은 주로 ‘도착’으로 쓰이지만, ‘도입’을 뜻하기도 한다. 두 단어를 수평선에 놓는다면, 도착은 마지막쯤에, 도입은 첫 부분에 있어야 할 것 같은 단어다. 이렇게 ‘어라이벌’은 한 단어 안에 상반된 이미지의 두 느낌을 가지고 있다.

이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단어다. 이 영화에서는 시간이 순서대로 흐르지 않는다. 주인공 루이스(에이미 아담스 분)는 현재에 살지만 미래를 함께 산다. 그의 딸의 이름 한나 역시 스펠링이 ‘Hannah’로, 앞뒤가 똑같다.

영화는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사람들의 사고는 달라진다고 설명한다. 영화에서는 지구인이 쓰는 언어와, 외계인들의 언어가 다르다고 설정되어 있는데, 영화 속 외계인은 시제가 없는 언어를 사용한다. 외계의 언어를 알고 있는 주인공 루이스의 시간은 과거-현재-미래가 뒤죽박죽으로 존재한다.

특히 주인공은 ‘언어에 따라 사고가 달라진다’라고 말하는데, 이 말은 수입ㆍ수출로 인해 변경되는 영화 제목에 대해서도 이야기 할 거리가 생긴다. 영화의 제목은 감독의 의도를 가장 잘 표출할 수 있는 수단이다. 때문에 감독이 의도하지 않는 제목 변경은 관객에게 다른 생각을 들려줄 수도 있게 된다. 생소한 다른 나라 글자 때문에 자국어로 변경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새로운 의도가 담긴 제목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leejh@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