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연금법 제정을 두고 은행권과 금융투자업계가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300조원 규모 개인연금 시장을 두고 주도권을 쥐기 위한 업권간 경쟁이 치열하다.
8일 은행 및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이달 중 `개인연금법 제정안` 국회 제출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금융위는 지난해 5월 다양한 연금상품 도입을 위해 개인연금법 제정 방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12월 입법예고를 마치고 본격 제정 절차에 착수했다.
금융위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 개인연금 적립금은 292조원에 달한다. 금융위는 보험, 신탁, 펀드 외 투자일임 상품을 연금계약 형태로 인정해 가입자가 폭넓게 연금 상품을 선택하도록 하기 위해 개인연금법 제정에 나섰다.
시중은행들은 법 제정을 앞두고 개인연금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움직임에 한창이다. 이를 위해 은행권은 금융위에 보험사, 증권사처럼 `일임형 신탁` 상품을 취급할 수 있게 해달라고 건의하고 있다. 일임형 신탁은 수익배분과 자산운용을 수탁자가 폭넓게 운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새로 도입되는 개인연금법이 근로자의 퇴직 수단이 되려면 퇴직연금도 실적 배당형 상품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292조원 규모 개인연금 시장에서 세제 혜택을 받는 펀드 규모는 8조8000억원에 불과하다.
개인연금 시장을 둘러싼 은행권과 금융투자업계 간 주도권 경쟁은 신탁업법 도입으로 더욱 불이 붙을 전망이다. 금융투자업계는 은행에도 일임형 신탁을 허용하는 것은 업권 구분을 무너뜨릴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은 앞서 취임 2주년 간담회에서도 “증권업계가 예금을 받겠다고 나서지 않는 것처럼 은행도 자산운용업은 건들지 말라”며 “신탁업법 별도 제정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현행법상 은행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외에는 일임업을 할 수 없다. 금융투자업계에서 “시중은행이 신탁업을 통해 개인연금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은행의 자산운용업 진입을 우려해서다.
금융당국은 업계 간 추가 갈등을 우려해 이날 출범한 신탁업 개선 전담반(TF)에도 관련 단체는 포함시키지 않기로 했다.
TF팀장은 맡은 김용범 금융위 사무처장은 “신탁이 지금처럼 금융사가 경쟁해 상품을 팔기 위한 수단이 아닌 종합재산관리기능 본연이 활성화되도록 신탁업법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불특정 금전신탁이나 수탁재산 집합운용은 논의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밝혔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신탁과 개인연금법 제정이 동시에 이뤄지기 위해서는 은행과 금융투자업계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형태로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면서 “특정 업계에 유리한 방향으로 신규 제도를 구상한다면 반발이 거셀 것”이라고 우려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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