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동아시아 산업벨트, 한국경제 성장의 근간

김경수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부회장
김경수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부회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경제 정책이 보호주의 부활을 가져온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번영을 가져다 준 세계 질서에 단층이 생기고, 세계 질서 프레임이 바뀌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에 1인당 소득 3만달러를 가져다 준 세계 경제 시스템이 바뀌고 있다. 디스플레이, 반도체, 자동차 등 일부 산업이 세계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신기술 기업의 발흥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한국 경제 성장률은 2%대로 침체됐다.

일자리가 늘지 않고 미래 불확실성이 커지는 현재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전략으로 행동해야 하는지가 이 시대의 과제다.

세계 성장의 과실을 공유할 수 있게 된 것은 선진국이 지식과 기술을 기반으로 새로운 산업을 불러일으키고, 기존 산업은 후진국으로 이전되는 메커니즘이 원활하게 작동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비교우위론에 바탕을 둔 경제 분업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나타난 보호주의의 심각한 폐해를 차단하고, 다자간 체제를 바탕으로 국가 장벽을 낮추고, 기술과 인재의 세계 흐름이 원활하게 된 것이다. 이런 환경이 세계 번영과 한국 경제 고성장을 가져오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이와 더불어 관세·무역일반협정(GATT)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정경 분리의 틀 없이는 한국의 고성장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 이후 세계 경제 프레임은 확연히 바뀌고 있다. 비교우위와 정경 분리 원칙이 무너지고 있고, WTO 및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의 적극 역할도 불확실해지고 있다.

종합하면 한국 경제 성장의 보호막이 사라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세계 시장에서 기업 활동의 메커니즘이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으로 발전되고 있어 사실 한국 경제로서는 내부 상황의 급격한 변화와 함께 지금과 차원을 달리하는 대외 환경 변화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경제에서 일하는 방식, 기업 경영 문화, 인재 양성 방식 등에 대한 외과 수술은 한시도 지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더욱 시급한 것은 보호주의 파고에 대항하면서도 글로벌하게 통용될 수 있는 신기술과 혁신을 과감하게 우리 경제 사회에 접목하는 일이다. 과거의 성공 방정식과 기존 시스템에 안주하거나 개혁을 주저해서는 한국 경제의 미래를 찾아볼 수 없다.

대외로는 보호주의가 확산되는 현 상황에서 동아시아 산업 벨트가 혁신과 신기술의 원동력으로서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는 만큼 이를 발전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동아시아는 우리 경제의 사활이 달렸고, 미국 실리콘밸리와는 달리 비즈니스 핵심 요소인 제조·시장·혁신능력 등 모든 요소가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전략 가치가 매우 높은 자산이다. 서플라이 체인을 포함한 제조 기술력에서 일본, 한국, 중국, 아세안 순서로 산업 발전과 혁신이 순환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산업을 예로 들면 일본 액정표시장치(LCD) 기술이 한국에 이전되고 더 나아가 중국에 이전됐으며, 지금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술이 한국에서 꽃피우고 있다. 시장 규모에서 보면 중국-일본-아세안-한국, 성장속도 면에서는 베트남-중국-일본 또는 한국 순으로 동아시아는 다이내믹한 구조로 결합돼 있다.

한국 경제의 미래는 동아시아 산업 벨트를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한국이 반도체, 디스플레이, 모바일, 통신 등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중국 등과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지만 동아시아벨트는 시장과 혁신의 핵심으로 인식해야만 한다. 중·일 등 아시아 국가들과 공동으로 보호주의 영향에서 격리시키는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외에도 다양한 대화 채널을 유지하고, 동아시아 산업 벨트가 가져다주는 상호 이익에 관한 논의도 활발하게 이뤄져야만 한다. 미국을 비롯한 주변 정세가 점차 정치, 외교, 경제가 혼재돼 가는 상황으로 변하고 있다. 우리는 기업, 사회, 정부 등 모든 방면에서 서해안 시대로 열린 동아시아 산업 벨트가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으로 유지·발전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김경수 부회장 kksskim@k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