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리뷰┃‘더 큐어’] 죄의식에 갇힌 현대인이 만난 ‘최악의 순수’

출처 : '더 큐어'
출처 : '더 큐어'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영화 ‘더 큐어’(원제 A Cure for Wellness)는 현대인들을 환자로 비유한다. 병의 원인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자 하는 야망, 또는 그 반대인 순수를 향한 집착이다. 그리고 병을 전염시키는 것은 죄의식이다. 자신의 병을 알고 있기에 점점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젊은 나이에 초고속 승진 가도를 달리던, 야심 가득한 증권사 임원 록하트(데인 드한 분)는 의문의 편지만을 남기고 떠나버린 CEO 펨브룩을 찾으러 스위스 한 시골 마을에 있는 건강센터에 간다.



웰니스센터는 생김새부터 범상치 않다. 오래된 성을 개조해 만든 이 센터는 마을과 동떨어져 있으며, 심지어 시계도, 핸드폰도 멈춰버린다. 게다가 이곳을 떠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한다. 덕분에 이곳은 마치 현실세계와 단절된 공간처럼 느껴진다. 의문은 점점 증폭되어 간다.

겨우 찾아낸 펨브룩은 자신이 건강하지 않아서 이곳을 떠날 수 없다고 한다. 그는 록하트가 정상인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건강하지 않기 때문에 본인의 병을 볼 수 없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과거 록하트의 엄마가 눈을 감은 채 춤을 추는 발레리나 인형을 만들면서 “발레리나는 자기가 꿈꾸고 있는 것을 모르고 춤을 춘다”라고 말하는 것과 맞물린다. 다만 발레리나는 눈을 감고 있기 때문에 자아성찰을 하지 못하지만, 동시에 아무 것도 모른 채 행복할 수 있다.

록하트는 이곳에서 빠져나가고자 하지만 어느 순간 입원을 당한다. 록하트는 과연 건강하지 못하다는 인식을 갖고 이곳에 스스로 남게 될까 아니면 벗어날 수 있을까.

출처 : '더 큐어'
출처 : '더 큐어'

부자들만 가득한 웰니스센터에서는 오직 물이 치료제다. 속세에 찌든 부자들을 가장 순수한 물질인 물로 치료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번엔 자신의 더러움을 치유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병들기 시작한다. ‘최악의 순수’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나아지는 것 자체를 부인하기도 한다. 결국 사람들은 순수해지더라도 웰니스센터를 벗어나지 못한다.

한편 ‘더 큐어’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떠올리게 한다. ‘포스트 디카프리오’라 불리는 데인 드한의 외모뿐만 아니라 ‘떠날 수 없는 장소’, 그리고 ‘죄의식’을 다룬다는 점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셔터 아일랜드’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특히 환자를 억지로 의자에 앉혀 놓고 치료를 강행한다든가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극도의 공포를 자아내는 모습이 닮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감은 대단하다. ‘링’ ‘캐리비안의 해적’ 등 기이한 비주얼을 선보였던 고어 버빈스키 감독의 작품답게 장어가 가득 찬 욕조나 안개로 가려져 있는 고전적인 성 등 한 장면 한 장면에 힘을 쏟아 부어 관객의 눈을 즐겁게 만든다. 심지어 현실적인 장면임에도 판타지처럼 보이게 하는 힘이 있다.

이야기적으로도 신경질적인 데인 드한과 신비로운 느낌의 미아 고스, 속을 알 수 없는 제이슨 아이삭스가 궁금증을 자아내는 전개를 펼치며 다음 장면에 대한 호기심을 부여한다. 특히 현재의 이야기들이 200년 전 사건들과 맞물리며 퍼즐을 풀어나가는 모습이 흥미롭다. 아름다움과 호기심으로 극을 이끈 ‘더 큐어’는 다만, 주체할 수 없는 광기로 치달아 간다. 이 시건의 근본적인 원인 및 관객들의 궁금증을 해소해야 할 때, 황당한 호러 판타지라는 카드를 꺼내들어 아쉽게 만든다. 오는 15일 개봉.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leejh@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