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 이립(而立)을 맞은 게임 산업에도 여전히 성장의 발목을 잡는 것이 있다. 바로 `게임중독` 프레임이다. 그동안 많이 거론돼 온 치료제가 `게임과몰입힐링` `사회공헌활동`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사건 하나만 터지면 약효는 곧바로 떨어진다.
요새는 아예 주사약 효력에 중독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프레임에 갇힌 업계가 성장촉진제로 `캐쉬템` `현질`이나 `확률`을 꺼내 드니 감히 게임 문화를 언급하기에 어려운 상황이다.
게임그래픽 기술이 좋아졌다고 결코 `예술`이 아니다. 소개 동영상이 리얼하다고 해서 감히 `영화`가 될 수 없으며, `스토리` 조금 있다고 장엄한 `문학`이 될 수도 없다. 게임은 게임일 뿐이다. 게임의 본질은 `놀이`이고, `놀이`는 즐거움에 그 기본 의미가 있다. 어느 게임 기업의 20주년을 주제로 한 책 제목이 `플레이(PLAY)`인 것은 이런 점에서 본질에 부합한다.
이런 고민 속에 우연히 그 해답을 주한독일문화원, 괴테인스티튜트에서 찾았다. 괴테인스티튜드는 세계 98개국에 159개 사무소를 두고 있는 교육 단체다. 우리나라엔 1969년에 설립됐으니 곧 `지천명`의 나이다.

단지 막연히 독일어 학습이나 교육을 생각했다가 최근에 한국 `놀공` 스튜디오와 `파우스트 되기(Being Faust)`라는 `빅게임`을 개발했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독일 젊은이들조차도 읽기 어려워한다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게임으로 재해석해 내다니! 그리고 그것을 세계로 수출하다니.
괴테인스티튜트는 최근 한국에서 백남준아트센터와 48시간 이내에 새로운 컴퓨터 게임을 만드는 `게임잼: 예술, 정치, 디지털 게임`을 개최했다. 게임 개발자와 예술가들을 초청, 협연을 펼쳤다.
괴테인스티튜트는 독일 디지털게임문화재단, 독일컴퓨터게임시상협회와 게임믹서라는 이벤트를 통해 독일의 게임 개발자들이 다른 나라의 게임 개발자들과 교류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독일에서 만든 게임을 `게임믹서`를 주최하는 나라의 떠오르는 시장에서 전시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 지난해에는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괴테인스티튜트 상파울루 사무소가 게임믹서를 주최했다. 괴테와 파우스트가 게임으로 부활한 셈이다.
지난해 말 게임문화재단이 주최한 국제세미나에서 독일 디지털게임문화재단 운영대표를 연사로 초청, 우리와 유사한 재단의 운영 상황에 대해 들어볼 기회가 있었다.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재단의 속성상 항상 기금모금(fundraising)이 이슈인 것은 우리와 같았다. 그러나 정부에서도 지원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와 달랐다.
교사·학부모와의 소통, 게임가이드, 매뉴얼 제작, 배포 등이 인상 깊었다. 주요 발표자들인 정신의학자나 의사들 속에서 단연 돋보이는 연사였다. 아무래도 뇌의 자기공명영상(MRI) 사진이나 그림을 그려 놓고 아무리 전두엽 등 기능을 이야기해도 일반인이 듣기에는 쉽지 않은 영역이었다.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듯 문화 형성, 전파, 교류는 마찬가지다. 장기 계획과 안목에 의해 진행돼야 한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이뤄진다. 굳이 중독을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스스로 예술이라고 강변할 필요도 없다.
괴테인스티튜트 홈페이지 우측 상단에는 그저 `Sprache. Kulutur. Deutchland`라고 쓰였을 뿐이다. “언어. 문화. 독일.”
서른 살의 한국 게임 산업이 50세가 되기 전, 그리고 이제 10살이 되는 게임문화재단이 앞으로 20년 동안 과연 어떤 한국식 `게임문화`를 형성해 나갈 수 있을까.
2017년 벽두, 우리나라 게임 산업과 게임 문화에 대해 최근 개봉된 독일 영화의 제목 `Who Am I?`라는 질문을 던진다. 게임 본질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정경석 게임문화재단 이사장 chairman@gamecultur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