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인공지능(AI) 경쟁에 불이 붙었다. 강력해진 구글 딥마인드 바둑 AI 알파고를 따라잡기 위해 한·중·일 3국도 바둑 AI 고도화에 전력 질주한다. 바둑 AI 개발은 바둑계뿐만 아니라 각국 AI 기술력 경쟁으로 번졌다. 지난해에 바둑 AI 가능성을 확인했다면 올해는 바둑 AI 프로그램 상용화 원년이다. 중국과 일본은 이미 자국 프로그램을 프로 바둑기사 실력으로 끌어올렸다. 국내에서도 AI 도입으로 바둑계의 변화가 감지된다.
바둑계는 알파고가 지금까지 바둑 AI 가운데 가장 앞선 것으로 평가한다. 지난해 이세돌을 꺾은 알파고는 최근 온라인 바둑 프로그램에서 익명의 고수로 등장, 한·중·일 랭킹 1위를 포함한 기사와 대국 60판을 벌여 모두 승리했다. 지난해 대국을 바탕으로 약점을 보완한 새로운 알고리즘으로 강한 실력을 과시했다.
중국과 일본의 추격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알파고 대국 뒤 고도화를 본격화, 단기간에 기력을 끌어올렸다. 중국은 거대 인터넷 기업 텐센트의 주도 아래 `싱톈`을 고도화했다. 온라인 비공식 대전에서 프로기사 대상 승률 90%를 기록했다. 커제 9단, 박정환 9단 등 최정상급 기사와의 상대 전적에서 우위를 점한 것을 감안하면 알파고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텐센트는 최근 또 다른 AI 바둑 프로그램 `리룽`도 공개했다. 리룽은 글로벌 바둑 사이트 한큐바둑에서 프로기사와의 대전 결과 80%대 승률을 거뒀다. 싱톈보다 승률이 떨어지지만 공격 및 변칙 기풍을 풍겼다.
일본도 소프트웨어(SW) 기업 드완고, 도쿄대, 일본기원이 합심해 바둑 AI `딥젠고` 고도화에 성공했다. 기존 AI 바둑 프로그램 `젠`의 상위 버전이다. 지난해 11월 조치훈 9단과의 대결에서 호선으로 1승 2패를 기록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 초까지 한국 바둑 사이트 타이젬에서 대국 240판을 펼쳐 218승 22패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승률이 90%를 웃돈다. 박영훈 9단은 대국 뒤 딥젠고의 기력을 한국랭킹 10위권 수준으로 평가했다.
한국은 열세다. 국산 AI 프로그램 돌바람을 고도화하지만 격차가 있다. 지난해 8월 전자신문배 바둑대회에서 유창혁 9단과 3점 접바둑 대결을 벌였지만 패했다. 아마추어 대회에서 고수를 연이어 꺾는 등 실력은 향상됐지만 아직 프로기사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고도화 작업을 통해 올해 상반기까지 프로기사 수준에 진입하는 게 목표다.
각국이 바둑 AI 프로그램 고도화에 힘을 쏟으면서 경쟁 양상이 바둑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AI 기술력 경쟁으로 번졌다. 바둑 AI 대결 결과가 로봇 경진대회처럼 AI 기술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로 작용한다. 체스와 비교해 어려운 게임 난도, 딥러닝 등 최신 AI 기술 적용, 데이터 학습 노하우 등 난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경일 솔트룩스 대표는 14일 “바둑이 AI 경쟁력을 가늠하는 마당이 될 것”이라면서 “바둑을 시작으로 산업 활용도가 높은 자율주행자동차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가 간 AI 기술력을 겨루는 자리가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바둑계에서는 올해가 바둑 AI 프로그램 상용화 원년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한·중·일 모두 바둑 AI 공식 대국을 추진한다. 딥마인드는 올해 알파고와 인간 프로기사 간 공식 대국을 추진한다. 이르면 4월 중국 커제 9단과 경기를 치를 전망이다. 싱톈도 올해 공식 대국을 벌인다. 딥젠고는 3월 월드바둑챔피언십에서 한·중·일 대표기사 3명과 대결한다. 일본 오사카에서 다음달 21~23일 열린다.
국내에서도 AI 바둑 프로그램이 참가하는 대회가 마련됐다. 한국프로기사회는 이달 AI 바둑 프로그램이 선수로 참여하는 `2017 프로암 바둑리그`를 창설했다. 프로기사와 아마추어 선수가 한 팀을 구성해 참가하는 대회다. AI 바둑 프로그램은 아마추어 자격으로 출전할 수 있다.
양건 한국프로기사회장은 “AI 바둑 프로그램 기력이 프로기사에게 승리할 정도로 높아졌다”면서 “AI 바둑 프로그램이 대회에 참여하도록 독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둑계에는 AI 도입이 침체된 바둑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흐르고 있다. 이미 프로 바둑기사 사이에서 알파고 등 AI가 놓은 수를 보고 연구하는 등 인간의 바둑 발전에도 기여한다. 앞으로 바둑 AI 간 대결, 인간과 AI 복식 경기 등 다양한 유형의 대국 창설이 가능하다.
양 회장은 “AI 바둑 프로그램 활성화로 기존에 금기로 여겨져 온 수에 대한 재평가와 연구가 이뤄진다”면서 “기술 연구뿐만 아니라 다양한 유형의 경기가 창설되는 등 바둑계 전체에 활기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오대석기자 od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