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새출발, 거버넌스 혁신]<2>너도나도 정책 슬로건만 요란…실체가 없다](https://img.etnews.com/photonews/1703/929527_20170306172046_110_0001.jpg)
#4차 산업혁명이 차기 정부의 조직 개편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주력 산업 고도화와 신성장 동력 창출을 통한 지속 가능 성장 여부가 4차 산업혁명 대응에 달렸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은 정보통신기술(ICT)과 전통 산업 융합을 기반으로 제조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더욱 똑똑한 기술과 부가 가치 높은 서비스를 창출한다. 또 핵심 기술인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로봇은 혁신으로 산업 지형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것이다. 선진국은 발 빠르게 치고 나간다. 중국도 예외가 아니다. 대통령 선거가 5월이냐 12월이냐에 상관없이 각 대선 주자도 이 같은 인식에 차이가 없다. 남은 것은 4차 산업혁명에 선제 대응하고, 흔들림 없는 중장기 산업 정책을 추진할 거버넌스 혁신에 나서는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4차 산업혁명을 총괄하겠다고 하지만 접근법 자체가 잘못됐다. 샘이 없는 곳에서 논에 물을 대겠다는 것과 같다. 4차 산업혁명의 흐름을 주력 산업, 중소·벤처, 연구개발(R&D), 인력 양성, 세제, 금융으로 세분화해 대응력을 높일 수 있는 국가 시스템 구성이 먼저다.
4차 산업혁명 대응이 당면 과제로 떠올랐지만 우리나라 산업의 활력은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위기는 여러 지표에서 확인된다. 최근 회복세를 보이고는 있다. 그러나 2년 가까이 지속된 수출절벽은 주력 산업 위기에서 출발했다. 중국발 공급 과잉과 국제 원자재 가격 하락 등도 원인이지만 산업 경쟁력 저하가 근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조선, 철강 업종은 이미 긴 구조조정 터널에 들어섰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석유화학 등 주력 산업의 가격 경쟁력은 회복 추세를 보인다. 그러나 위기는 언제든 다시 닥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생산성 저하다. 광공업 분야의 대기업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은 2011~2014년 〃1.4%를 기록했다. 2001~2005년 8%에 육박하던 증가율이 곤두박질쳤다. 공교롭게 2015년 1월부터 수출 감소가 시작됐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대내로는 생산성이 떨어진 가운데 대외 요인까지 겹친 셈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생산성 및 혁신 역량 격차도 커졌다. 중소기업 생산성은 대기업의 60% 수준에 불과하다. 1990년대 후반에 80% 중반을 기록하기도 한 격차가 더 벌어졌다. 또 우리나라 기업 전체 연구개발(R&D) 투자액의 70%는 상위 5개 대기업이 차지한다. 업종도 전기·전자, 자동차, 부품 등 일부에 편중됐다. 중소기업들은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할 혁신 역량과 역동성을 갖추지 못하고 존폐 기로에 선 셈이다.
도전성 강한 창의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스마트화, 서비스화, 플랫폼화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창의 아이디어가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개념 설계, 소프트웨어(SW) 전문 인력을 양성할 교육 시스템 환경부터 열악하다. 지난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61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대학 교육이 경제 요구에 부합하는 정도`에서 우리나라는 55위에 머물렀다. 독일(8위), 미국(10위)은 물론 중국(49위)에조차 밀렸다.
또 진입 장벽이 높은 규제 수준과 경직된 고용 구조, 생산성과 동떨어진 임금 체계 등도 4차 산업혁명 대응을 힘들게 하는 요인이다. 한마디로 총체 난국이다.
산업연구원 관계자는 6일 “지나치게 높은 규제 수준으로 기업들이 산업 변화에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응하기 어렵고, 노동 시장도 경직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역동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R&D 혁신 역량 강화와 창의 인재 양성을 포함한 중장기 산업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기업들도 4차 산업혁명 대응과 신산업 발전을 위해 △R&D 및 혁신 역량 확충 지원 △기업 환경 개방화 조성 △창의 인재 양성 등을 최우선으로 꼽는다.
그러나 이 같은 과제를 단기간에 마무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부처 간 칸막이와 힘겨루기가 되풀이되는 한 요원한 과제에 머물 공산이 크다. 현 정부에서 기획재정부·미래창조과학부·산업통상자원부·국토교통부·환경부 등이 신성장 동력 창출, 기업 구조 조정, 규제 개선 등 곳곳에서 불협화음을 나타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따라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정부 지원 체계를 스마트하게 교통 정리할 정부 조직이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이 단일 부처 체제든 부총리급 통할 조직이든 짧아도 10년 이상의 흔들림 없는 중장기 추진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주도하는 `톱다운` 방식으로 방향을 설정하고 민간을 끌고 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간 자율성을 최대한 확보하면서 기업의 요구와 수요 기반의 중장기 대응 전략을 짜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갑수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독일, 일본 등 선진국들의 4차 산업혁명 대응은 기업이 먼저 머리를 맞대고, 기술 개발과 확산 과정에서 필요한 정책을 정부가 뒷받침하는 구조”라면서 “차기 정부에서 컨트롤타워를 만든다고 해도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등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R&D 정책 기조에서 탈피하지 못하면 4차 산업혁명에 적절히 대응하는 것은 요원하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기획해서 내려주는 기술 개발 정책에서 벗어나 기업들이 4차 산업혁명 대응을 위해 실제 필요한 기술과 시장 수요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명확하고 흔들림 없는 국가 전략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다. 핵심 인력 양성을 비롯해 산업 구조 개편이 단일 정권에서 이뤄지기 어려운 만큼 정권이 교체돼도 10년, 20년 이상 지속될 중장기 산업 정책의 밑그림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주훈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우리나라는 경제, 산업 시스템 전환을 위한 유연성이 부족해 4차 산업혁명 준비도 다른 나라에 비해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라면서 “규제 개혁과 R&D 역량 강화를 통한 혁신 생태계 구축, 창의 인재 양성, 노동 유연성 제고 등 다양한 경제 구조의 개혁 속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촉구했다.
양종석 산업경제(세종) 전문기자 jsy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