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사는 전기차 충전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전국에 전기차 충전소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전기 판매를 한국전력(한전)이 틀어쥐어 수익이 나지 않아서다. 전기차 보급사업이 활발한 제주도에서만 사업을 진행할 뿐, 전국 사업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통신업을 하는 B사는 일본에서 전기와 통신 결합상품이 나왔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이 업체는 태양광 발전소를 운영하지만, 전기를 한전에 판매하는 것 말고 색다른 활용법이 없는 것에 안타까워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 신성장동력으로 각광받던 전력 사업이 `전기사업법`에 발목잡혀 지지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전의 전력 판매 독점을 규정, ICT를 활용한 창의적 신산업 등장을 막는다는 비판이 거세다. 특히 `전력민영화`와 무관한 만큼 조속히 빗장을 풀어야 한다는 요구가 적지 않다.
전기차 충전소는 전기사업법에 가로막힌 대표 사업이다. 전기사업법에 따르면, 국내에서 한전만 전기를 독점 판매할 수 있다. 민간사업자는 전기차 충전소를 운영할 수 없다. `지능형전력망법`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단순 충전서비스만 제공할 수 있다. 요금 결정권이 없다. 한전이 정한 충전용 요금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사업성이 떨어진다. 전기차 충전소 보급이 더딘 결정적 원인으로 손꼽힌다. 자율적으로 기름값을 정하는 주유소와 대비된다.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사업모델도 전기사업법에 막혔다. 현재 태양광 발전소가 생산한 전기는 반드시 한전에 팔아야 한다. 다른 곳에 판매하면 불법이다. `발전과 판매를 동시에 못한다`는 전기사업법 7조 겸업금지 규정 때문이다.
ICT 업계가 추진하는 `에너지 효율화 서비스`도 신재생에너지가 빠진 반쪽짜리에 머무르는 가장 큰 원인이다. 외국에선 겸업을 허용하면서 다양한 사업모델이 등장했다.
일본에선 소프트뱅크와 라쿠텐이 전기와 휴대폰, 숙박시설을 묶은 결합상품을 출시했다. 전기와 철도 결합상품도 등장했다. 전기와 생활필수 서비스를 값싸게 이용할 수 있는 길이 국내에선 막힌 셈이다.
전기차 보급 확대, 신재생에너지 활성화, ICT 신성장동력 육성 등 많은 장점을 가진 전기사업법 개정은 `전력민영화 아닌가` 하는 의심 탓에 국회에서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전기 판매 일부를 민간에 개방하다보면 언젠가 통째 민영화 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다.
이훈 의원(더민주당)은 지난해 7월 한전 전기판매 독점권을 못박은 법률(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한전은 그대로 공사로 둔 채 전기차 충전과 신재생에너지 등 극히 일부 전기 판매를 민간에 개방하는 것을 두고 전력민영화를 걱정하는 것은 지나친 확대 해석이라는 비판이다.
더욱이 국가재난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중앙집중이 아닌 분산전원 전력체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ICT 관계자는 “파리협약 발효로 탄소배출을 줄여야하는 상황에서 정부 보조금 모델로는 신재생에너지나 전기차 보급이 힘들다는 게 정부와 업계의 일치된 결론”이라면서 “민간의 자발적 투자를 늘리기 위해서는 전기사업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