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 1300억원이 투입되는 금융 공동 벙커형 백업센터 구축 사업은 각종 사이버테러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 프로젝트다. 모든 은행이 참여하는 최초의 보안 공공 사업으로, 데이터 유실 제로화를 표방한다. 주센터와 이격 거리 140㎞로, 지진과 전쟁 등 광역 재해에도 안전하다. 최소 1만6500㎡(5000평)에서 3만3000㎡(1만평) 규모다.
금융권 공동 벙커형 백업센터 건립이 전면 유보된 데에는 한국은행과 금융결제원 간 이견이 도화선이 됐다. 한은은 금융정보 안전망 확보라는 공익성을 강조한 반면에 금융결제원은 사업성과 경제성을 우선순위에 뒀다. 두 기관 간 벙커형 백업센터 건립 취지에 대한 목적이 다른 것이다.
미묘한 신경전까지 벌어졌다. 최근 금융결제원이 한국은행에 벙커형 백업센터 건립을 백지화하고 다른 방식으로 백업센터를 건립하자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원격지 형태로 운영하되 지하 벙커형이 아닌 지상이나 다른 형태로 센터를 건립하자는 의견이다. 한은 산하 금융정보화추진협의회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만든 운영 방안을 사실상 거부한 셈이다.
금융결제원 측의 논리도 타당성은 있다. 지하 벙커 형태로 백업센터를 건립하면 시설 관리 문제가 생긴다. 습기와 먼지 등 센터 관리에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금융결제원은 금융권 공동 백업센터 건립 추진을 위해 '백업센터 추진반'을 별도로 구성했다. 최근 벙커형 백업센터 사업의 타당성 검토를 진행했고, 경제성이나 수익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하 벙커 형태로 백업센터가 운영되면 금융결제원의 인력을 파견해야 하는데 근무 여건이 좋지 않다는 내부 의견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에 한은은 금융결제원이 공익성보다 수익성 등을 우선으로 한다면서 당초 계획대로 해야 한다고 사실상 금융결제원의 의견을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의결한 사항이기 때문에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은행권도 금융결제원의 행태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다.
“모든 은행이 참가 동의서까지 모두 제출했는데, 이제 와서 민간 사업자처럼 수익성 여부를 따지는 것은 공기관으로서 적절치 않다”며 “제3백업센터는 활용도나 경제성보다는 혹시 모를 사이버 테러 등에 대비해 안전판 역할을 하는 것이 목적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벙커 백업센터뿐만 아니라 금융결제원의 여러 사업 가운데 상당수가 민간 사업자와 경쟁하거나 수익 사업을 하는데 집중하는 행태여서 1000억원 이상이 드는 거대 프로젝트 운영 사업자로 금융결제원이 단독으로 추진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든다”고 설명했다.
금융결제원이 사실상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서 금융권 공동 제3백업센터 사업 추진이 언제 재게될 지는 불투명해졌다.
이미 미국, 이스라엘 등 해외에서는 벙커형 백업센터가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비자카드가 대표적이다. 비자카드 데이터센터는 70톤 트럭이 시속 45㎞로 돌진해도 뚫리지 않는 외벽을 갖추고 리히터 규모 7.0 규모의 지진과 시속 120㎞급 태풍(토네이도)에도 견딜 수 있도록 벙커 형태로 설계됐다. 그 결과 2010년 세계 최대 해커 집단 어나니머스가 세계 최대 결제망을 보유한 비자카드를 대상으로 사이버 테러를 감행했지만 온라인 서비스 일부가 제한된 것 외에는 별다른 피해를 보지 않았다.
반면에 현재 국내 금융사의 경우 금융전산시스템을 파괴하는 사이버 공격이 본격 개시될 경우 금융 정보가 영구 손실될 가능성이 90% 이상이다.
금융보안 관계자는 “지능화하는 사이버 테러 손실은 한 번 터지면 걷잡을 수 없는 수준”이라며 “금융 데이터 유실 방지는 금융사가 준수해야할 필수 사항인 만큼 정부 부처 간에 조속한 교통정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