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가전업체들이 변신하고 있다. 기존 가전 사업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고 다양한 분야로 영역을 넓히며 변화에 나섰다.
변신을 시도하는 이유는 가전 산업 자체의 한계가 크게 작용했다. 가전 제조기술은 갈수록 상향 평준화되고 있어 시장 경쟁이 격화됐다. 가격 경쟁도 치열해지면서 가전 산업 이익률도 낮아졌다. 이미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가전 산업은 사양산업이라는 분석까지 나왔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위기에 처한 가전업계가 과감하게 변신할 수 있는 이유는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까지 탄탄한 기술을 갖추고 있어서다. 기반 기술을 바탕으로 다른 영역으로 뻗어나가기 유리하다. 전장부품, 로봇, 사물인터넷(IoT) 등은 가전 관련 기술을 기반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변화 직면한 가전산업
2000년대 들어서면서 가전산업은 '사양산업'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됐다. 세계적으로 산업 성장은 정체되고 경쟁은 강화됐기 때문이다. 가전시장 연평균 성장률은 정체를 거듭했다. 가전업체 이익률도 감소세를 보였다. 이런 가운데 중국 등 개발도상국에서 신규 가전 업체가 시장에 진입했다. 신규 업체들은 품질보다 가격 경쟁으로 시장을 흔들었다. 시장 경쟁이 격화되며 가전산업 위기론은 더욱 커졌다.
국내도 예외는 아니었다. 2000년대 이후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기업도 가전 사업에서 성장 정체에 직면했다. 매출은 유지했지만 수익성이 개선되지 않았다. 가전 사업에 대해 내부에서도 부정적인 평가가 나왔을 정도다. 때마침 휴대폰이라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내면서 돌파구를 찾았지만 가전 사업 자체에서는 성과가 미진했다.
중소 가전업계는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브랜드 파워에서 대기업에 밀리고, 가격에서는 중국 업체에 치였다. 경쟁에서 도태되면서 중소 가전업체가 설 자리가 줄고 있다.
◇가전 버리거나 스마트홈으로 거듭나거나
가전업계는 성장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변신을 택했다. 가전을 넘어 새로운 영역에서 신사업에 도전한다. 아예 가전사업을 포기하고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곳도 있다.
가전업계 변신의 대명사는 제너럴일렉트릭(GE)이다. 토머스 에디슨이 설립한 세계적인 제조기업 GE는 지난해 가전사업 부문을 중국 하이얼에 매각했다. GE가 중국 자본에 가전사업을 넘겨준 것은 미국을 포함해 세계에 충격을 줬다.
GE 변신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최근에는 프랑스 기업 수에즈와 캐나다 연기금에 수처리 사업도 매각했다. GE 수처리 사업은 산업용 물 처리와 관련 장비 사업을 하는 곳으로, 지난해 매출이 20억달러에 달했다. 이에 앞서 금융 사업도 매각하고 관련 지분도 처분했다.
기존 사업을 잇따라 매각한 GE는 소프트웨어와 사물인터넷(IoT)에 집중하며 4차 산업혁명발 변화에 나섰다. 제프 이멜트 GE 회장은 '2020년까지 세계 10위권 소프트웨어 기업 도약'이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지멘스, 보쉬 등 유럽 가전기업은 스마트홈을 목표로 정했다. 기존 가전제품에 IoT를 결합해 스마트 기능을 장착하고, 이들 제품을 연결해 스마트홈을 구현한다. 로봇 등 스마트홈 허브 역할을 할 기기 개발도 힘쓰고 있다. 수년 전부터 스마트홈 사업에 집중하면서 유럽 가전 업체 간 표준 공동 개발 등으로 세력을 키우고 있다.
전통의 일본 가전기업도 변신 중이다.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7'에서 파나소닉이 보여준 변화는 충격적이었다. 지난해까지 파나소닉은 TV, 카메라 등이 메인 전시품목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커넥티드카와 전장부품, 스마트홈 등을 전면에 내세웠다. 넓은 파나소닉 전시장에 TV는 단 한 대만 전시했다.
소니도 게임, 부품, IoT, 로봇, 인공지능(AI) 등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수년간 적자에 빠져 있던 소니는 부품과 게임 사업으로 2015년부터 흑자로 돌아섰다. 이후 기존 가전사업 대신 로봇, IoT 등에 집중 투자하며 성장동력을 만들어 가고 있다.
◇삼성-LG도 변화 동참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세계적인 변화 흐름에 동참했다. 양사가 모두 힘을 싣는 분야는 전장 부품사업이다. 자동차의 전장화가 가속화되면서 자동차 부품 시장은 미래 먹거리로 부상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11일 글로벌 전장부품 기업 하만을 인수했다. 국내 인수합병(M&A) 사상 최대 규모인 9조3000억원을 투자한 빅딜이었다. 삼성은 하만 주주총회 승인과 미국 등 10개 반독점 심사 대상국 승인 등 인수 절차를 마무리했다. 하만 인수로 삼성전자는 전장부품 시장에서 일약 세계적인 기업에 진입했다. 하만이 보유한 고객사를 그대로 확보한 것도 큰 성과다.
이에 앞서 삼성전자는 2015년에 실시한 조직개편에서 전장사업팀을 신설하고 전장사업 강화를 추진해 왔다. 하만 인수는 전장사업 강화에 정점을 찍었다는 평가다. 하만 인수는 삼성전자 기존 사업과 시너지 효과도 클 것으로 기대된다.
LG전자는 삼성전자보다 먼저 자동차 부품 사업에 뛰어들었다. 2013년 자동차부품을 전담할 VC사업본부를 신설, 꾸준히 투자했다. 초기에는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기기 사업에 주력했지만 현재는 전기차 부품 등으로 영역을 확대했다. GM이 출시한 전기차 '쉐보레 볼트 EV'에 구동모터를 비롯한 핵심부품 11종을 공급하는 성과도 거뒀다. VC사업본부는 분기 매출이 우상향을 기록하면서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모두 스마트홈 사업에도 힘을 쏟고 있다. 삼성전자는 모든 가전과 기기를 IoT로 연결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LG전자 역시 AI 기반 홈IoT와 로봇을 중심으로 미래 사업을 육성하고 있다. LG전자는 가정용 허브 로봇, 공항 안내 로봇, 청소로봇 등 생활 로봇 시장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도 다양화하고 있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이미 20여년 전부터 순수 가전사업만으로는 한계라는 인식이 있었다”면서 “가전업체들도 IoT, AI 등 새로운 기술을 접목하고 로봇·전장부품 등 신규 사업도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 글로벌 주요 가전업체 변화 양상, 자료:업계 종합>
권건호 전자산업 전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