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교체기가 되면서 과학기술 행정 체제 개편 논의가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다양한 그림이 그려지고 있지만 담론의 기조는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과학기술 컨트롤타워'를 강화하고 '과학기술계의 위상을 높이자'는 주장이다.이런 논의의 밑바탕에는 고도 성장기의 과학기술계 향수가 담겨 있다. 과학기술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최고 통치자가 컨트롤타워가 돼 정부출연연구기관, 이공계 대학원, 국가연구개발사업과 같은 제도를 만들고 과학기술 관련 예산을 확대해 추격을 이룬 시대를 호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활약하던 산업화 시기는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좋은 시절이 됐다. 저성장 구조가 형성되면서 과학기술-산업 발전-성장의 인과 관계는 의심받고 있다. 과학기술을 활용해 전략 산업을 키우면 성장의 과실이 여러 분야로 흘러가는 낙수 효과도 소멸했다. 오히려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이 때문에 격차를 줄이고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 성장하는 '포용적 성장'이 시대 정신으로 논의된다.
저성장·양극화로 대표되는 이런 뉴노멀 상황은 과학기술 활동과 행정 체제에 새로운 관점을 요구한다. 고도 성장기에 과학기술은 그 자체가 '좋은 것'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저성장과 양극화가 구조화된 지금은 우리 사회의 도전 과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좋은 과학기술(Good S&T)'이 필요하다.
고용을 창출하고 사회적 격차를 해소하며 안전할 뿐만 아니라 감염병, 미세먼지와 같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책임지는 혁신(Responsible Innovation)'이 요구되고 있다. 과학기술은 포용적 성장과 연결돼야 하며, 구제역이나 조류인플루엔자(AI)와 같은 안전 문제 해결에 기여해야 한다.
과학기술 행정 체제도 사회·경제적 과제 해결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계와 과학기술 그 자체를 위한 과학기술 정책은 지금에는 일반 국민에게 설득력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과학기술 정책과 행정 체제에는 우리 사회의 주요 과제 해결에 과학기술이 기여하는 '문제지향적 접근(Challenge-driven Approach)'이 요구되고 있다. 그동안 많이 논의돼 온 과학기술 분야 간 조정과 융합을 넘어 '과학기술과 그것을 활용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경제·사회 영역'과의 연계·통합이 과학기술 정책의 중요한 기능이 돼야 한다. 과학기술과 경제·사회 혁신이 연계되는 틀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최종 사용자의 지향적, 문제 지향적 접근을 구현하기 위해 노·사·정위원회와 같이 과학기술계, 최종 사용자 사회 조직, 정부가 참여하는 '과·사·정협의회'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과학기술계의 다양한 회의체는 정부와 과학기술계·산업계 전문가 중심으로 운영됨으로써 최종 사용자는 배제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좋은 과학기술' 발전 방향을 설정하고, 문제 현장의 지식과 네트워크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파트너로서 최종 사용자와 시민들의 참여하는 '참여형 거버넌스'가 요청된다.
현재 과학기술 행정 체제 논의에는 이것이 빠져 있다. 거버넌스를 이야기하지만 과학기술 공급과 관련된 부처 재편에만 집중하고 있다. 과학기술이 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활용될 것인지 충분한 고민이 없다. 행정 체제가 바뀌어도 우리 사회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짙다.
뉴노멀 시대에 과학기술이 부활하는 길은 사회와 새로운 파트너십을 형성해서 우리 사회의 도전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과학기술을 넘어서는 전망으로 행정 체제 개편을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송위진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사회기술혁신연구단장/선임연구위원, songwc@step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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