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한없이 무겁다.
22일 오후 8시50분에 본 인양을 시작한다는 방송을 듣고 잠든 터여서 잠자리도 편치 않았다. 평소 같으면 오전 6시 반 자명종 소리를 듣고도 한참 더 뒹굴뒹굴하겠지만 눈이 바로 떠졌다. 방송은 녹이 잔뜩 낀 세월호 선체를 비췄다.
씻는 둥 마는 둥 일터로 향하는 길이 탁하고 어둡다. 부쩍 심해진 미세먼지 탓도 있지만 요 며칠 즐겁기만 하던 기억은 싹 지워졌다. 지난날 좋고, 행복하고, 기쁘고, 사랑스러운 것을 표백시킨 듯한 3년 전의 그날로 돌아왔다. 잊으려 해도 다시 아프다.
봄꽃 찾아온 3월이 참 잔인하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이렇게 좋은 날, 그대가 오신다면~' 좋겠는데 우리에게 돌아온 건 슬픔 한가득 쇳덩이다. 녹슬고 기운 그 쇳덩이 속에 아직도 찾지 못한 아홉 영혼이 함께 타고 있다. 마지막까지 아들, 딸, 선생님을 찾아달라는 아우성이 진도 팽목항에 가득하다. 후벼 파는 게 이런 고통일 거라고 감히 상상만 한다. 그러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에 어깨가 축 내려간다.
국민이 이토록 슬프고 아픈데 이를 토닥이고 어루만질 국가는 없다.
대통령은 궐위 상태고, 다음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해 뛰는 대권 주자는 진심인지 가식인지 모를 위로에만 집중한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똑같은 슬픔을 느낀다'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진심보다는 '정치적 언어'가 너무 강하다.
국민들은 인간의 눈빛으로, 말로 위로받고 싶은데 온통 정치적 언어와 행동을 앞에 두고 진심은 뒤로 밀렸다. '정치는 원래 그랬다'고 하면 이제부터 정치는 그러지 않아야 한다.
5월 9일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면 달라질까?
안타깝게도 별로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이 이제까지 대부분 전문가들의 단정적 결론이다. 대통령을 새로 뽑고 새 정부가 출범한다고 해서 나라 체제가 손바닥을 뒤집듯 달라질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 수십년 켜켜이 쌓여 온 관행이 하루아침에 바뀔 가능성도 거의 없다.
결국 국민 스스로 치유하는 법을 익히고 스스로 주권을 행사하는 법을 알아 가야 한다.
주권 행사의 가능성은 지난해 가을과 겨울, 이번 봄을 거쳐 오며 어느 정도 확인했다. 우리나라 최고 헌법 수호 기관이 대통령을 파면하면서 '대한민국이 국민 주권주의 국가임'을 분명히 못 박았다.
이제 스스로 치유하는 법을 알아 가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개인도 마찬가지지만 국민 전체로도 '나아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것이다. 희망과 자신감을 잃는 것만큼 스스로를 위축시키는 것도 없다. 조금씩 나아지고 바꿔진다는 확신만 갖는다면 그 목표를 향해 전진할 수 있다.
정치나 정부가 국민을 위로하고 상처를 치유해 주지 않는다면 국민 스스로 각성하고 강해지면 된다.
많은 이가 걱정하는 것은 슬픔이나 아픔 그 자체가 아니다. 이런 분위기가 나라 전체를 덮고 무기력한 침묵이 언제 끝날지 모르게 지속되는 것이다.
쓰러진 것이 문제가 아니라 다시 일어나려는 엄두조차 내지 않는 것이 문제다. 다시 일어날 힘이 있으면 다시 걸을 수도, 뛸 수도 있다.
이진호 산업경제부 데스크 jho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