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무어의 법칙'이 한계에 부딪히게 됐습니다. 반도체 발전 과정을 예측하고, 새로운 단계로 이끌 수 있는 패러다임이 탄생할 때입니다.”
김정호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는 그동안 진리처럼 여기던 무어의 법칙이 한계에 부딪혔다고 단언했다. 50여년 전 생각으로는 현재의 발전상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무어의 법칙은 1965년 인텔 창업주인 고든 무어가 제안했다. 반도체 트랜지스터 수가 2년마다 두 배로 증가한다는 예측이다. 그동안 업계는 미세화 공정으로 칩 성능을 지속적으로 향상시켰으나 곧 한계에 부딪힌다. 반도체 회로 선폭이 수 나노미터(㎚) 수준으로 줄어들면 더 이상 미세화가 어렵다.
김 교수는 앞으로는 트랜지스터 수가 아니라 '3차원 반도체 적층 구조'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주장을 자신의 성을 딴 '김의 법칙(Kim's Law)'에 담았다.
김의 법칙은 미국 '조지아공대 패키징 학회' '환태평양 패키징 학회'에서 발표됐다. '디자인콘'에서도 언급됐다.
3차원 반도체 적층구조는 반도체 칩을 쌓는 기법이다. 웨이퍼에 구멍을 뚫어 전극을 수직 형성하는 'TSV' 기술을 활용한다. 김 교수는 이런 적층 구조 층수가 2년마다 두 배로 늘어날 것이라고 확언했다. 2010년 이후 공개된 세계 반도체 회사 자료를 수집해 분석한 결과다.
“이미 엔비디아, AMD 등 주요 관련 업체 등이 관련 제품을 내놓는 등 반도체 3차원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수년 안에 120단 이상의 적층 칩을 만날 수 있습니다.”
김 교수의 주장은 20여년에 걸친 반도체 적층구조 연구에서 비롯됐다. 김 교수는 이 분야가 태동한 20년 전부터 헌신한 3차원 반도체 분야 선구자다. 관련 논문만 세계 최고 수준인 500여편을 쏟아냈다. 66명 석·박사를 배출해 애플, 인텔, 퀄컴 등 기업의 핵심 인력으로 성장시켰다. 이 성과로 지난해 세계 최대 전기전자분야 학회 'IEEE'로부터 펠로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펠로는 IEEE가 극소수에만 부여하는 회원 최고등급이다. 3차원 반도체 적층구조 상업화에도 기여했다. 2009년부터 SK하이닉스에 고대역폭메모리(HBM) 3차원 반도체 설계기술을 제공했다.
김 교수는 3차원 반도체 적층기술과 김의 법칙이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반도체 시장 발전을 선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금은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현실화로 '컴퓨팅 파워'와 데이터 처리량이 급증하는 시대입니다. 새로운 패러다임 아래 3차원 반도체 적층구조를 발전시키면 우리나라의 세계 반도체시장 선도, IT강국화를 지속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대전=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