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왕이다'라는 개념을 손님이 가지면 안 되잖아요.”
미국 출신 방송인 타일러 라시가 TV 프로그램에서 지적했다. 우리가 당연시해 온 '손님은 왕'이란 말에 한 외국인이 일침을 가했다. 소비자 권리가 도를 넘어 '진상 고객'을 탄생시킨 현 세태를 꼬집은 듯하다.
옳은 말이다. 손님을 왕처럼 모신다는 건 사업자의 마케팅 수단이다. 사업자의 겸손한 자세를 부각시켜서 소비자 만족도를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그러나 어느새 손님은 진짜 왕이 됐다. 종처럼 하대하고, 폭언과 폭력도 서슴지 않는 손님의 행태가 허다하다. 배려가 의무로 변질되고 있다.
기업간거래(B2B) 시장이나 공공사업 분야에서도 그릇된 인식 때문에 기업의 속앓이가 심하다. 최근 경기도 산하 기관은 통신시스템 구축 사업을 발주했다. 조달 평가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기업이 우선협상자가 됐지만 제안 기술 규격이 다르다는 이유로 최종 계약에서 탈락했다. 기술 협상 기간에 우선협상자의 이의 제기를 무시한 채 일방적 통보로 협상을 종료, 입맛에 맞는 다른 사업자를 택한 것이다.
공공기관이 특정 기술 규격을 제안한 것부터 잘못이다. 더욱 큰 문제는 발주 기관이 우선협상자를 배제하는 과정에서 소통은 찾아볼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불만은 많지만 계약상 을인 기업은 발주 기관의 눈치를 보며 답답한 가슴만 두드릴 뿐이다.
해당 분야에서 사업을 지속하려면 갑의 눈 밖에 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관행이 적폐가 돼 발주기관을 '왕'으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공공에서조차 '손님은 왕'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에서 기업 보호와 육성은 요원해 보인다. 소비자 권리는 당연히 지켜야 하지만 상식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 상도덕이란 말도 있다. 진상 손님이 시장을 왜곡시키고 기업을 고사시키기 전에 마땅한 대책이 시급하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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