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5월 제1기 방송통신위원회가 케이블TV 거래 관행을 조사하기 위해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를 상대로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에 대한 프로그램 공급계약서와 채널 송출 내역을 수집한 일이 있다.
방통위의 당시 조사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옛 방송위원회에 SO와 PP 간 수신료 배분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어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른 후속 조치였다.
방통위의 조사는 매우 소극적 수준으로, 결론부터 얘기하면 형식에 그친 조사였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3월 말 유료방송 플랫폼 사업자에게 콘텐츠를 제공하는 PP의 숙원이나 다름없는 이른바 SO와의 거래 관행에 매우 희망적 변화를 시사하는 일대 사건이 일어났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유료방송 채널 개편에 관한 규제 개선 방안의 일환으로 유료방송 플랫폼 사업자에게 올해부터 미래부에 제출하는 정기 수시 개편 거래 계약서에 계약 당사자 간 완전 합의를 전제로, 특히 계약서 작성 시 채널 번호와 콘텐츠 사용료를 모두 명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시행(안)을 전달했다.
미래부는 케이블TV, 위성방송, 인터넷TV(IPTV) 등 플랫폼 사업자가 이용 약관 심사를 위해 제출하는 프로그램 공급계약서에 채널 번호, 기간, 프로그램 사용료 등 주요 내용을 적시하지 않으면 이용 약관 심사 접수 자체를 거부하는 등 강력히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주요 내용을 기재한 프로그램 공급 계약 체결 이후 이행하지 않을 경우 방송법에 의거해 시정명령이나 과징금을 부과할 방침이다.
일반적 거래 계약에서 양 당사자가 합의 내용을 정확하게 계약서에 명시하는 것은 상식이자 당연한 행위다.
유료방송에서는 이것이 왜 기존의 거래 관행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키는 것인지 의문을 품을 수 있겠지만 PP는 거의 '노예계약'에서 해방되는 것과 같은 엄청난 파급 효과와 실질적인 혜택을 기대한다.
기존의 유료방송 콘텐츠 거래는 간단하게 말하면 이른바 백지 계약서가 관행이었다. 설령 사전에 계약 내용을 합의한다고 하더라도 콘텐츠 수신료에 대해서는 정확한 액수의 합의 없이 백지 상태로 계약서가 작성됐다.
그리고 1년 후 플랫폼 사업자의 매출 결과가 나온 뒤 이른바 수신료 협상이라는 과정을 거쳐 사후 정산하는 게 유료방송 거래의 관행이었다. 이 때문에 방송 콘텐츠 공급자는 플랫폼 사업자에게 늘 목이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해당 연도의 콘텐츠 가격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어려운 입장은 차치하더라도 우선 매출에 대한 예측이 불가능한 만큼 새로운 콘텐츠의 제작 구입 등 투자 계획을 적극적으로 세우거나 추진할 수도 없었다.
결과적이긴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플랫폼 사업자의 성장 대비 콘텐츠 사업자의 성장이 부진한 것도 이 같은 관행이 누적된 영향 때문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미래부의 이번 조치는 앞으로 유료방송 콘텐츠 발전에 상당히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채널 편성에 대한 완전 합의를 전제로 한 계약 내용 명시 또한 플랫폼 사업자와 콘텐츠 사업자 간 갑을 관계를 개선하는 좋은 변화라 할 수 있다.
유료방송 거래 관행 개선이 앞으로 유료방송 발전의 큰 동력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하동근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PP 협의회장 hadong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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