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도체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씨앗 산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는 반도체 분야 기술 발전이 없다면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공장자동화 등 4차 산업혁명이 어렵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이 분야 투자를 게을리하면 혁명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우리나라는 메모리 반도체 강국이다. 세계 1위(삼성전자)와 2위(SK하이닉스) 업체가 한국에 있다. 그러나 시스템 반도체 분야 경쟁력은 세계 수준에서 한참 떨어진다. 세계 반도체 매출액 가운데 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30% 수준이다. 나머지 70%가 시스템 반도체다.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한국 시스템 반도체 업체는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시스템 반도체 중요성은 매출액 비중 그 이상이다. 육성과 지원 정책이 절실하다.
시스템 반도체를 주요 사업으로 삼는 국내 팹리스 업계 경쟁력은 날이 갈수록 저하되고 있다. 올해 초 전자신문이 코스닥 상장 톱15 팹리스 업체의 지난해 실적을 분석한 결과 10곳 가운데 7곳의 영업이익이 30%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창업주가 회사를 팔고 떠나면서 바이오 등으로 업종을 전환하는 회사도 속출했다. 센서와 지능형 시스템 반도체는 4차 산업혁명 기반 부품이다. 이대로 가다간 자칫 기반 부품을 수입에 의존해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정부는 팹리스 산업계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반도체 펀드, 인수합병(M&A) 지원단 운영, MPW(Multi Project Wafer) 서비스 독려 등 다양한 정책을 펴기로 했다. 반도체 펀드는 기업 750억원, 정책금융 750억원, 벤처캐피털 500억원을 더해 2000억원이 조성됐다. 조만간 이 재원으로 다양한 투자 활동이 전개된다. 반도체펀드 사무국 내에 창업투자사 임원 등으로 지원단을 구성해 관련 업체 M&A도 돕는다. 국내 업체 간 M&A로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를 반영한 결과다.
MPW는 웨이퍼 한 장에 여러 개 연구개발(R&D)용 칩 시제품을 올려 제작하는 서비스다. MPW를 활용하면 시제품 생산 비용을 아낄 수 있다. 그간 국내 파운드리 기업 가운데 동부하이텍과 매그나칩반도체가 MPW 서비스를 제공했다. 최근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정부 독려로 MPW 서비스를 실시하기로 했다. 국내 팹리스는 시제품과 양산을 맡길 파운드리 선택 폭이 넓어졌다.
반도체 업계에선 설계 인력 양성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반도체 설계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대학 내 관련 학과 개설 등을 통해 인력 수급에 숨통을 터줘야 한다”고 말했다.
공정과 소자 등 기초 기반 기술 투자를 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고성능 시스템 반도체 소비전력을 줄이려면 기술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2년마다 반도체 집적도가 두 배씩 증가한다는 무어의 이론은 기술 장벽으로 더 이상 진척이 어렵다는 견해가 많다. 결국 전력소비량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의미다.
최리노 인하대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AI나 자율주행차를 효율적으로 구현하려면 반도체 전력소모량을 지금보다 1000분의 1 수준까지 줄여야 한다”면서 “장기 기술개발 로드맵을 세우고 차근차근 연구를 진행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