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가을. 김해수는 금성사 기술간부 시험에 수석 합격한다. 당시 락희화학은 화장품과 치약으로 성공을 거둔 참이었다. 전자제품으로 눈을 돌린다. 라디오를 첫 제품으로 택했다. 1년 전에 설립된 금성합성수지공업사는 금성사로 이름을 바꾼다.
산요 라디오를 분해하고 조립하기를 반복한다. 이해가 안 되면 일본 기술자에게 자문, 조언을 받았다. 1959년 8월에 시제품이 나온다. 금성 A-501. A는 교류(AC), 5는 5구식 진공관, 01은 1호 제품을 각각 뜻한다. 디자인도 산뜻했다. 왼쪽에 스피커, 오른쪽에 주파수 패널이 붙었다. 전면 중간을 가로지르는 금색 선 장식은 산뜻함을 더했다.
스피커 패널 상단에는 왕관 모양의 샛별 로고, 하단 왼쪽에는 골드스타(GoldStar)라는 상표가 돋을새김으로 붙어 있다. 미대 출신 박용귀가 마무리한 골드스타 로고는 미려했다. 기본은 인쇄체였지만 마지막 'r'는 필기체였고, 'S' 't' 'a' 'r'는 밑줄 친듯 연결됐다.
첫 국산 라디오는 이렇게 세상에 나왔다. 학자는 이것을 리버스 엔지니어링 방식이라 부른다. 기존 제품이나 장치의 기술적 원리를 거슬러 찾아가는 방식이다. 제품을 분해하면서 왜 이런 방식으로 조립했는지 추론한다. 가장 오래되고 성공한 혁신 방식이다. 후발 기업에 더없이 유용하다.
에이머스 윈터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와 비제이 고빈다라잔 다트머스대 교수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리버스 이노베이션 방식을 활용하자고 말한다. 두 가지는 사뭇 다르다.
리버스 엔지니어링은 기존 제품을 카피한다. 기존 성능이나 기능을 복제할 수 있다면 그것이 최선이다. 리버스 이노베이션은 다르다. 다른 시장의 세그먼트에서 수요가 있는 다른 제품을 좀 더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개 피라미드 가장 아래 부분에서 시작한다.
이머징마켓에서 저가격으로 구현하기 위한 새로운 혁신을 하고 이것을 개선, 선진국 시장으로 들어간다. 리버스 엔지니어링이 잘나가는 기존 제품을 본뜨는 방식이라면 리버스 이노베이션은 기능을 제공하는 다른 방식을 찾는 것이다.
두 저자에게 사례는 많다. 페라리가 기존 방식이라면 타타자동차 나노는 새 방식이다. 다키아 로간도 마찬가지다. 반값 정도에 성능은 기존 자동차와 비슷하게 만들려 했다. 만들어진 로간은 나중에 이런저런 사양을 바꾼 후 유럽 시장에서 베스트셀러가 된다.
하이얼이 출시한 와인 쿨러는 업계 선두 주자이던 라소믈리에의 절반 가격이다. 출시 2년 만에 미국 시장 60%를 장악했다. 임브레이스는 기존 인큐베이터 가격의 2%로 유아용 워머를 만든다. 미숙아 체온을 유지해 주는 것만으로도 많은 생명을 살린다. 플라스틱 상자인 인큐베이터 대신 엄마와 아이가 맞대고 안도록 된 워머는 인간적이다. 캥거루 케어 방식은 엄마와 미숙아에게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리버스 이노베이션을 실행하는데 알아야 할 것은 많다. 두 저자는 몇 가지 원칙을 말한다. 첫째로 단순하라. 고객 필요에서 가치를 추출하라. 단순하게 디자인하라. 스티브 잡스는 단순함 자체를 가치로 승화했다. “혁신이란 잘못된 선택은 아닌지, 너무 과하지는 않은지 확인하는 수천 가지 물음에 '아니다'라고 답하는 것입니다.” 필립스 모토도 '센스 앤드 심플리시티', 감성과 단순함이다.
둘째로 소외된 소비자를 생각하라. 신흥 시장 소비자를 생각해 보자. 나름대로 지불할 수 있는 기능을 원했지만 기존 제품의 높은 가격을 치를 수는 없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빈민가에서 여성이 고수머리를 펴기 위한 미용실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그 대신 고수머리를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다면 어떨까. 엘로이자 아시스는 저소득 여성들의 꾸미고 싶은 욕구를 알고 있었다. 슈퍼 릴랙싱은 이렇게 탄생했다.
셋째로 유연하게 사고하고 행동하라. 중국 쓰촨성의 시골 농가에서는 세탁기를 감자 흙을 씻어내는데 쓴다. “세탁기는 이런 목적에 쓰는 것이 아닙니다”는 답 대신 누군가 이렇게 쓰고 있다면 그런 세탁기를 만들기로 했다.
두 저자는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왜 서구 기업들은 유연하지 못할까.” 두 사람이 찾은 답은 다섯 가지였다. 현실 안주, 경직된 사고, 위험 기피, 무관심, 시간만 소모하는 경직된 제품 개발 과정.
주변을 한번 살펴보자. 만일 당신이 이런 다섯 가지를 쉽게 본다면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그 때 리버스 이노베이션 방식을 한번 떠올려 보면 어떨까.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