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업무를 시작한 지도 어언 10여년이 됐다. 변호사의 생은 질문을 받고 그에 대해 가장 합리적이고도 실천적인 답을 준비하는 일이라고 했는가.
그 가운데에서도 전자문서나 전자서명에 관심을 두고 일하면서 받는 질문으로 10여년 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것이 있다. 다름 아닌 “메일이나 워드프로세스 프로그램으로 생성한 파일도 법적으로 효력이 있는지요”다.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컴퓨터로 생성된 파일이나 메일, 메시징 프로그램으로 교환한 의사가 일치하면 그것 자체로 계약이 성립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에 대한 답변은 “당연하다”다. 이 말 속에는 사실 그걸 왜 묻느냐는 반문이 섞여 있다. 특히 지금과 같은 클라우드, 빅데이터, 인공지능(AI)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다.
전자문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의 의미는 중요하다. 이들 새로운 환경을 지탱하는 것이 결국 무수히 많은 컴퓨터 파일, 즉 전자문서다. 이를 법적으로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는 유언과 같은 예외 사례를 제외하면 사적 영역에서 계약을 체결하거나 법적 행동을 할 때 어떠한 형식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의사가 표명되거나 상호 의사가 합치되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계약 분야에서는 이를 가리켜 '낙성불요식(諾成不要式)'이라고 한다. 계약 체결에서 형식은 필요 없다는 얘기다. 구두로 된 계약도 이를 증명할 수 있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아무런 제약 없이 인정된다. 그래서 민사소송법상으로도 증거가 될 자격에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고 증거 가치를 법관의 판단에 맡기는 '자유심증주의' 원칙을 뒀다.
이러한 원칙이 존재함에도 입법자는 행여 의문을 품는 이들을 위해 친절하게도 전자문서법을 제정했다. 법률명을 변경하기 이전에는 전자거래법이었다.
이 법 제4조 제1항에 '전자문서는 다른 법령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전자적 형태로 돼 있다는 이유로 문서로서의 효력이 부인되지 아니한다'는 규정이 명시돼 있다. 이는 내가 변호사 업무를 시작한 무렵부터 존재했으니 역시 10여년이 흐른 셈이다.
'십년마일검(十年磨一劍) 상인미증시(霜刃未曾試)'라는 시구가 있다. 10년 동안 한 칼을 갈아 왔으나 아직 서리 같은 칼날을 시험해 보지 못했다는 의미다. 오랫동안 연마해 온 학문과 재능을 천하를 바로잡는 일에 쓰겠다는 포부로 칼을 잡은 협객에 비유한 말이라고 한다. 문득 전자문서가 지니는 법적 효력에 관한 논의도 이와 같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전자문서 효력에 관해 정부가 해설서를 출간했다. 예상대로 '당연한' 이야기가 실렸다.
우리 사회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파고에서 살아남을 뿐만 아니라 그 앞에 서려는 꿈을 꾸기도 한다. 이제 10여년 동안 잘 벼린 전자문서법이라는 칼을 어떻게 쓰느냐는 국민과 우리 산업계의 몫이다.
이 칼이 클라우드도 빅데이터도 AI도 모두 가르고, 디지털 문서 환경에 또 다른 이정표를 세우기 바란다.
김진환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 jhkim4@kimch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