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로벌 은행 씨티은행이 한국 지점 약 80%를 폐쇄한다고 밝혔다. 다른 시중은행들도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과 점포 축소를 계획하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 등장과 정보기술(IT) 기반의 비대면 채널 활성화로 전통 은행 점포가 사라지고 있다.
과거 최고 직종으로 손꼽히던 은행 인력은 50세를 채우지 못하고 생존 경쟁의 기로에 놓였다.
실제 국내 은행들은 3년 동안 적자 나는 점포를 절반가량 폐쇄했다. 적자 점포는 문을 닫고 가까운 점포는 통폐합하는 은행 구조조정이 본격화됐다.
은행들이 올해 유지할 점포는 총 6865개다. 지난해 7150개 대비 285개 감소한 수치다. 은행 점포는 2012년 7695개로 정점을 찍은 뒤 올해까지 5년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줄어드는 은행 점포 285개는 사상 최대 규모다.
은행 창구를 통한 대면 거래보다 스마트폰 등 온라인을 통한 비대면 거래가 확대되면서 상대적으로 고비용 구조인 점포를 유지할 이유가 점차 줄어들고 있어서다. 외국계 은행인 한국씨티은행은 비대면 중심으로 영업 전략을 바꾸면서 올해 점포를 126개에서 25개로 통폐합한다. 점포 수는 줄이고 규모는 키워서 대면 서비스 질을 높이겠다는 복안이다.
금융 전문가들은 급격한 IT 발달과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고객 취향까지 감안하면 오프라인 지점을 통해 고객을 만나고 영업 서비스를 해 온 기존 관행은 빠른 시일 안에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케냐가 주는 교훈…아프리카보다 늦은 한국
눈여겨봐야 할 국가가 있다. 아예 은행이 사라진 국가다. 세계 최초로 모바일 송금을 시작한 곳은 저개발 국가인 케냐다. 국내 금융권은 케냐의 비즈니스 모델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동통신사인 사파리콤이 제공하는 M-PESA라는 서비스가 모바일 송금의 시초다. 휴대전화를 사용, 송금 이 외에 난방비와 수업료 등 일상에서 이뤄지는 지불이 가능한 솔루션이다.
구조는 간단하다. 우선 이용자는 사파리콤 창구에 가서 송금액과 수수료를 지불한다. 그 후 송금 상대방에게 휴대전화로 송금액을 전달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비밀번호를 보낸다. 메시지를 받은 상대방은 사파리콤 창구에서 해당 화면과 비밀번호를 제시하고 현금을 받는다. 은행을 끼지 않는 이 송금 방법은 은행계좌를 트지 못한 빈곤층 사이에서 순식간에 확산됐다.
사파리콤에 따르면 M-PESA는 원래 휴대전화 이용자의 정착화를 높이기 위한 부대 서비스로 시작했다. 2007년에 시작된 서비스 등록자 수는 매년 늘어나 2017년 현재 3000만명을 넘어섰다.
일용 잡화점을 중심으로 하는 서비스 대리점은 10만개를 넘었고, M-PESA를 통해 1개월에 약 19억달러의 휴대머니가 움직이고 있다.
M-PESA뿐만이 아니다. 아프리카 시장에 핀테크 광풍이 불고 있다. 전통 뱅커는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젊은이 2명이 설립한 이머지모바일. 이 회사는 휴대전화에 소형 카드 리더기를 붙여서 휴대폰을 신용카드 단말기로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전까지 신용카드 결제가 불가능하던 소규모 상점을 중심으로 이용자가 확대되고 있다.
나이지리아에서는 2002년에 설립된 벤처 인터스위치가 정부·기업 대상의 온라인 결제시스템을 개발, e커머스의 급속한 보급과 맞물려 유저 3200만명을 확보하고 있다.
IT가 대면 기반과 재래식 거래를 고수하는 뱅커 시스템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는 방증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인터넷전문은행 도래와 각종 핀테크 기술이 접목되면서 전통 금융사는 '메이저'에서 '종속 파트너'로 전락될 위기에 처했다.
◇스타벅스와 경쟁해야 하는 뱅커
단순히 IT 비대면 채널 도래로 전통의 뱅커 시스템이 몰락하는 것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은행과 증권사, 카드사 등은 비대면 채널 준비를 오래 전부터 해 왔다.
그렇다면 경쟁력 측면에서 왜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것일까. 사용자 습관을 제대로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금융 거래 플랫폼이 전통 채널 기반에서 융·복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타벅스가 대표적인 예다. 고품질 서비스를 상품으로 삼는 스타벅스는 오래 전부터 모바일 활용에 착수했다. 선불카드를 모바일로 전환하고 포인트제를 도입했다. 모바일을 이용한 사전 주문으로 계산 카운터에 줄을 서지 않고도 빠르게 아이템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스타벅스에서 모바일 결제가 급상승하고 있다. 2016년 4분기 모바일 결제 건수가 전체 결제 건수의 27%를 기록했다. 사전 주문은 전체 거래 건수 가운데 7%로 늘었다. 지난해에는 3%였다.
모바일 결제 이용자는 800만명. 3명 가운데 1명이 사전 주문 결제를 이용하고 있다. 미국 내 리워드 회원은 1200만명, 연평균 18% 신장률이다. 지난해 스타벅스 선불카드에 충전된 금액은 북미에서만 60억달러에 달했다.
스타벅스가 모바일에 힘을 쏟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우량 고객 기반 확대를 위해서다. 모바일로 고객 체험을 항상 신선하고 깊이 있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올해는 음성 응답과 챗봇을 개발했다. 서비스 명칭은 '마이 스타벅스 바리스타(My Starbucks Barista)'다.
이 어시스턴트에 음성으로 주문과 결제를 의뢰할 수 있도록 했다. 마치 진짜 바리스타와 대화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버추얼 어시스턴트는 음성뿐만 아니라 채팅도 한다. 챗봇처럼 메시지를 입력하면 응답해 준다. 이 기능에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하고 있다.
버추얼 어시스턴트는 아직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 iOS를 이용하고 있는 고객 1000명을 대상으로 베타 테스트를 실시하고 있는 가운데 올 여름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미국에서는 스타벅스가 주축이 된 유통 채널 협의체 MCX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은행에 가지 않고도, 전통 신용카드가 없어도 모바일 기기 하나만 있으면 모든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베끼기 식 상품 경쟁만 해 온 전통 금융사는 이제 수많은 IT 기업, 유통사 등과 경쟁해야 한다.
◇뱅커의 몰락 막기 위해선 오픈 이노베이션 대안
한국도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케이뱅크를 중심으로 인터넷전문은행이 탄생했고, '동전 없는 사회' 시범 사업 등이 본격화됐다. 출발은 늦었지만 전통의 창구 의존형 금융 서비스에서 탈피하는 사회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전통 금융사는 이제 오픈 이노베이션 모델로 조직 자체를 바꿔야 한다. 기존 항아리형 인력 구조와 점포로는 변화의 중심에 설 수 없게 된 것이다. 오픈 이노베이션이란 사내에 한정하지 않고 혁신 기술과 아이디어를 수입하고, 투자해서 융합하는 개방형 채널을 의미한다.
전통의 뱅커 인력을 어떻게 재배치하느냐가 생존의 키 포인트가 될 것이다. 소액투자 및 금융기관 인력 재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이들 인력을 스타트업 기업의 비즈니스 지원 액셀러레이터로 전환하는 작업이다. 또 별도의 벤처캐피털을 설립하거나 지분 투자로 직접투자를 강화해야 한다. 비즈니스 컨설팅까지 아우르는 인큐베이션 허브를 구축하고, 단기적으로는 금리 경쟁이 아닌 '해커톤' 등 단기 집중형 이벤트 등을 통해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과의 협업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핀테크가 금융 시장 파괴로 불리는 이유는 금융사가 아닌 IT 기업이 금융업에 진출하고, 자금과 담보가 아닌 IT를 전면에 내세워 기존의 금융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엎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금융 시장이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고 생존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핀테크로 불리는 새로운 기술 융합 또는 기술 우위의 핀테크 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 방안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영국은 금융사의 체질 개선을 위해 전문 인큐베이터와 액셀러레이터를 설립했다. 금융과 관련된 핀테크 기업의 기술 개발을 위해 금융테크혁신연구소를 설립하고 꾸준히 후원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씨티그룹, 도이체방크 등 내로라하는 대형 은행들이 후원 기관으로 참여해 핀테크 기업 육성에 나서고 있다. 영국 내 관련 액셀러레이터만 50개가 넘는다.
결제 인프라 혁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새로운 결제 방식 확산에 대비하기 위해 '페이먼트 시스템 레귤레이터'를 설립하기도 했다. 영국 결제위원회를 주축으로 전화번호를 통한 지급결제 서비스인 페이엠(PayM) 서비스를 가동하고 있다.
이 밖에도 테크시티와 같은 벤처 단지 조성으로 핀테크 기업 창업과 유치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최소 자본금 규정을 폐지하는 등 창업 절차를 간소화하고 사무실과 임대료를 런던 중심가의 5분의 1 수준으로 책정하는 등 체계화한 지원 생태계를 조성했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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