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투자 시장에 신기술금융회사(신기사)가 보폭을 넓히고 있다. 지난해 신기사가 설립한 신기술투자조합 수는 창업투자조합 수를 넘어섰다. 결성 조합 규모도 창투조합 절반에 육박할 정도로 늘었다.
조합 결성뿐만 아니라 투자 방식과 범위, 설립 주체도 다양하다. 펀드 위탁운용사(GP)뿐만 아니라 재무 투자자(FI), 전략 투자자(SI)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초기 기업에 대한 펀드를 통한 간접투자뿐만 아니라 기업인수목적회사(SPAC), 자기자본 투자까지 다양한 형태로 투자에 나서고 있다. 올해 들어 증권사 출자 신기사뿐만 아니라 기업 출자 신기사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신성장 동력 발굴 위해 스타트업 찾아라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신기술금융업권 신규 펀드 결성 규모는 1조2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3000억원 증가했다. 결성 수는 127개로 전년 대비 71개 늘었다. 투자 잔액은 3조원으로 전년 말(2조4000억원) 대비 26.8% 늘었다.
여신금융협회는 신기술금융업권의 투자 실적 증가는 정부의 벤처활성화 정책 기조, 공동 위탁운용사(GP) 허용과 진입 장벽 완화 등 제도 지원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전자신문이 지난해 여신금융협회 회원사로 가입한 신기술금융업권 감사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신기사 투자 규모 증가는 일부 신기사가 주도했다. 삼성벤처투자, 포스코기술투자, NHN인베스트먼트파트너스 등 주로 기업 출자 신기사가 활발하게 투자했다. 특히 삼성벤처투자가 지난해 결성한 펀드는 전체 신규 펀드 가운데 3분의 1을 차지했다.
삼성벤처투자는 지난해 각 2000억원 규모의 신기술조합을 2개 신규 결성했다. 업계는 지난해 삼성전자 해외 스타트업 인수 자금 상당수가 삼성벤처투자가 운용하는 신기술조합에서 조달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포스코기술투자는 지난해 381억원을 신기술금융자산에 투자했다. 지난해 포스코기술투자는 포스코-플루터스 신기술투자조합, 포스코-플루터스 바이오투자조합, 포스코문화융합콘텐츠 펀드 등 6개 조합에 출자자로 참여했다.
NHN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NHN인베스트먼트파트너스를 신설했다. 기존 NHN엔터테인먼트 계열사 NHN인베스트먼트의 신기술자산을 NHN인베스트먼트파트너스로 인력 분할했다. NHN인베스트먼트는 위탁운용사, NHN인베스트먼트파트너스는 출자자를 각각 맡는 구조다. NHN인베스트먼트파트너스는 지난해 SLi 그로쓰엑셀레이션2 투자펀드에 125억원을 출자했다.
이 밖에 메가스터디, 빅솔론, 미래엔, 이지바이오 등 중견·벤처기업이 설립한 신기사도 활발하게 투자에 나서고 있다.
메가스터디 계열 신기사인 메가인베스트먼트는 지난해 메가-성장사다리 팔로우온 투자조합을 신규 결성했다. 빅솔론 자회사 메타베스트는 메타 신기술조합 1호, 이노-인베스터 신기술투자조합에 출자자로 나섰다. 교육업체 미래엔이 최대 주주로 있는 엔베스터도 이노-인베스터 조합에 3억원을 출자하고 5개 조합을 연이어 결성하는 등 보폭을 넓히고 있다.
VC업계 관계자는 “지난날 전략 투자자라는 명칭으로 이름을 올리던 일반 중견·벤처기업도 미래 성장 동력 발굴을 위해 신기사를 만들어 직접 투자에 나서는 사례가 늘고 있다”면서 “신기사로부터 투자받은 기업들은 단순 자본 확충보다 미래를 대비한 인수합병(M&A) 등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리스·할부 주력 여신사, 금융계 여신사도 신기술조합에 기웃
리스나 할부를 주력으로 하던 기존 여신업체와 금융 계열 신기사도 신기술투자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IBK캐피탈은 지난해 8개 조합에 총 325억원을 출자했다. SBI인베스트먼트가 운용하는 IBKC-SBI바이오펀드 1호에 150억원을 출자해 지분 절반을 취득한 것뿐만 아니라 크라우드매칭펀드, 미래성장동력 투자조합 등에 지분 절반가량을 출자했다.
미래에셋캐피탈도 지난해부터 신기술투자 인력을 확충해 네이버, GS 등과 대규모 조합 결성에 나서고 있다. 미래에셋벤처투자가 운용하는 미래에셋창업청년조합에 140억원, 2016 KIF-미래에셋 ICT전문투자조합에 120억원 등을 각각 출자했다.
신한캐피탈은 신설 신기사 케이클라비스와 공동으로 7개에 이르는 신규 투자조합을 결성했다. 스노우볼투자조합2호, 이앤-티그리스 신기술투자조합 등 지난해 신규 결성 조합 수만 10개에 이른다. 효성캐피탈과 아주캐피탈도 스마일게이트2016KVF, 아주 좋은 기술금융 펀드에 각각 출자했다.
한 신기술금융사 관계자는 “신기술조합이 기존의 벤처펀드 대비 출자금 모집이 유용할 뿐만 아니라 신기술사업자 대상의 대출까지 가능하기 때문에 일반 기업이나 금융회사도 신기술투자조합 결성이 부쩍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증권사들이 신기사를 활용해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지난 2일 신한금융투자는 프로젝트 펀드 형태의 신기술투자조합 '신한 디스플레이 신기술투자조합 1호'를 100억원 규모로 결성했다. 미리 투자처를 확정하고 조합을 결성하는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신한금융투자가 위탁운용사(GP)를 맡고 증권사, 여신사 등 다수 기관이 조합원으로 참여했다. 투자 대상은 MST코리아가 발행한 100억원 규모의 전환상환우선주(RCPS)다.
신한금융투자 관계자는 “성장성 있는 신기술사업자를 발굴, 신속한 자금 투자로 그 성장을 지원하고 투자자에게는 안정적이고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는 등 신기술투자조합 활성화를 지속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 2월 신기술금융업 등록을 마친 KB증권도 신기술금융조합을 활용, 중소·벤처기업 투자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주식이나 채권 등 기존 자산에 대한 수익률 기대가 떨어지면서 자연스레 금융회사들도 새로운 투자처를 모색하고 있는 추세”라면서 “우수 비상장 기업 관련 주식이나 채권을 개인투자자에게 대체 투자 상품으로 판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기술투자조합 활용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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