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가 더 강해져서 돌아왔다. 23일부터 중국 커제 9단과 대국을 벌이고 있는 '알파고 2.0'은 지난해 이세돌 9단과 대결한 '알파고'와는 또 다른 수준을 보여 줬다. 23일에 이어 25일 대국에서도 커제 9단은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알파고 2.0은 지난해의 알파고와 비교, 석 점 정도 실력 차이가 난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어마어마한 차이다.
알파고는 인간이 30년 동안 학습해야 할 분량을 하루 만에 학습한다. 1년이면 더 이상 학습할 기보가 없을 때가 됐다. 인간의 기보를 보고 학습하던 알파고가 이제는 스스로 기보를 만들고, 묘수를 만들어 내는 수준이 된 것이다.
하드웨어(HW)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알파고는 지난해 이세돌 9단과의 대국에서 1920개의 중앙처리장치(CPU)와 50개의 텐서프로세서유닛(TPU)을 사용했다. 여러 대의 컴퓨터를 네트워크로 연결, 연산 능력을 더하는 분산형 방식이었다. 그러나 알파고 2.0은 CPU를 200개로 줄이고, TPU도 4개만 사용한다. 이제는 단일 컴퓨터로 대국한다. TPU는 구글이 고안한 인공지능(AI)용 칩이다. 연산 속도가 15~30배 빠르다.
대국 스타일도 변했다. 절대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시종일관 우세를 점해 갔다. 대세관과 균형감각으로만 상대를 제압해 가는 고수의 면모를 보여 줬다는 평이다. 커제 9단은 “이전 알파고의 수는 인간의 것이었으나 지금은 신선이 두는 수 같다”고 혀를 내둘렀다고 하니 그가 대국 중에 느꼈을 벽이 얼마나 높았는지 충분히 짐작된다.
바둑은 신선놀음이라고도 한다.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시간을 허비한다고 해서 붙여진 말이다. 그만큼 바둑은 수가 무궁무진하다. 수를 모두 읽어 내려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러나 알파고는 신선들도 수백년 걸려서 읽어 낼 수를 몇 분 만에 읽어 내고 있다. '신산(神算)'이다. 물론 컴퓨터의 능력이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커제 9단이 '신의 수'라고 언급할 만도 하다.
이번 알파고와 커제 9단의 대결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바둑도 이제는 AI에게 배워야 하는 시대가 됐다. 이세돌 9단도 지난해 알파고와의 대국 후 깨달은 바가 있어 기풍이 달라졌다고 한다.
AI를 대하는 입장에도 변화를 줘야 할 때가 됐다. 4차 산업혁명을 관통하는 핵심 기술도 AI다. 이번 대국은 AI가 이미 인간의 능력으로는 처리할 수 없는 대용량의 빅데이터를 빠르게 분석하고 대응 방안까지 내놓을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자리가 됐다.
우리에게는 바둑 이외에도 수천년을 이어 오는 미래 예측 학문이 있다. 바로 '주역(周易)'이다. 주역은 수천년 동안 관찰한 천지만물의 변화 정보를 토대로 미래 변화를 예측한다. 천지만물을 음과 양으로 나누고, 이를 토대로 만물의 변화를 괘(卦)로 기호화해 조합하는 방식으로 풀어 낸다. 그러나 그 과정이 너무 난해해서 익히기 어려운 것이 단점이다. 이 때문에 이를 요술이나 점으로 치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 알파고가 보여 준 능력이면 AI를 활용한 빅데이터 분석과 예측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 이상 주역에 기대지 않고도 더 정확한 미래 예측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AI의 학습 능력은 이미 상상을 초월한다. AI가 앞으로 우리 앞에 어떤 세상을 열여 줄 지 기대가 크다. 이번에도 알파고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 줬다.
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