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초 어린이날을 앞두고 서울 동대문 문구·완구 종합시장을 찾았다. 평소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에 원하는 거 다 사 준다며 조카 한 명까지 총 세 명을 데리고 나서는 호기까지 부렸다. 겨우 시장을 몇 차례 왕복하는 동안 호기가 후회로 바뀌었지만 수많은 문구와 장난감은 나름대로 괜찮은 눈요깃감이 됐다.
그 가운데 단연 눈길을 끈 것이 있었다. 2~3개의 날개가 달린 팽이같이 생긴 조그만 물건이었다. 가격도 2000원에서 몇 만원까지 다양했다. 뭐지?
수많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세 명이나 시야 안으로 챙기느라고 당시에는 호기심을 해결하지 못했다. 그리고 2~3주 뒤 기사를 통해 그 물건의 정체를 파악했다.
피짓 스피너. 꼼지락거리거나 만지작거리는 행동을 뜻하는 피짓(fidget)과 회전 장치를 뜻하는 스피너(spinner)의 합성어다. 2~3개의 날개가 달린 납작한 팽이 모양의 피짓 스피너는 중심축에 볼 베어링이 있어서 한 손으로 슬쩍 돌려도 1분 이상 힘차게 돌아간다. 책받침, 책, 방석은 물론 급식용 우유박스까지 돌리던 학창 시절의 치기어린 장난이 떠오른다.
피짓 스피너는 1997년 미국인 캐서린 해팅어가 난치병으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딸을 위해 손으로 간단히 즐길 수 있게 만든 장난감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당시 해팅어는 이 장난감의 특허를 신청했고, 제품 출시를 위해 다국적 완구 회사와도 접촉했지만 상품화되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20년이 지난 오늘날 비로소 이 장난감이 빛을 본 것이다.
피짓 스피너는 지난해 말부터 북미, 호주, 유럽 등에서 폭풍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 장난감이 집중력을 향상시킨다는 속설도 있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반대로 작용, 미국 등에서는 학교에 가져오지 못하게 금지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피짓 스피너는 국내에도 지난 4월께부터 입소문을 타고 급격히 확산됐다.
피짓 스피너 열풍에는 다양한 해석이 있다. 대체로 현대인의 불안과 초조가 반영됐다는 설로 귀결된다.
복잡한 현실 속에서 단순·반복되는 패턴 속의 무의식에서 위안을 받는다는 해석이다. 미국의 한 잡지는 최근 피짓 스피너를 '트럼프 시대에 완벽히 들어맞는 장난감'이라고 평했다. 손가락으로 돌리고 지켜보기만 하는 것으로 생각의 포기를 유도하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상태를 퍼뜨린다는 것이다.
대회까지 개최하는 '멍 때리기'나 단순 반복 후렴구 '뚜루루 뚜루'로 유명한 애니메이션 핑크퐁의 '상어가족' 노래가 유행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인 것 같다.
며칠 전부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추가 도입 보고 문제로 청와대와 국방부가 진실 게임을 벌이고 있다. 지휘명령 체계가 어느 부문보다 명확해야 할 국방 라인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국방부를 대상으로 여론 공방전을 벌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반론과 반론이 이어지는 상황이 같은 자리를 계속 도는 피짓 스피너의 날개 같다. 시시비비는 신속·단호하게 원칙대로 처리하면 된다.
국민은 지난해부터 겪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이 진행형이 되길 바라지 않는다. 영화가 코미디로 흐르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제는 영화에서 벗어나 미래를 향한 현실로 걸음을 내디뎠으면 좋겠다.
홍기범 금융/정책부 데스크 kbho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