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자 약관을 심사해 불공정성 여부를 가리는 것은 사후 조치라는 한계가 있다. 정부는 사후 조치만으로 소비자 피해를 줄이는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 1992년 약관법을 개정한 표준약관제도를 도입했다.
표준약관제도는 사업자나 사업자단체가 표준이 되는 약관을 정해 문제가 없는지 공정거래위원회에 심사해 달라고 청구하면 공정위가 심사를 거쳐 최종 확정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공정위는 '약관 규제의 실제' 자료에서 “모든 약관의 사전 심사는 사실상 불가능하고, 사업자를 지나치게 제약하는 등 자유경제 질서에 반한다”면서 “사업자나 사업자단체로부터 청구가 있는 표준약관에 한해 심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표준약관은 행정지도·지침 성격으로, 법률상 강제력이 없다. 표준약관을 따르지 않았다고 무조건 약관법에 저촉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업자는 표준약관을 이용해 스스로 약관을 작성하는 노력을 덜 수 있고, 소비자와 불필요한 분쟁도 예방할 수 있다.
소비자는 사업자가 표준약관을 적용하면 계약 불공정성을 의심하지 않고 안심하고 거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업자는 표준약관을 사용할 때 공정위 로고, 등록번호를 부여한 표지를 사용할 수 있다. 표준약관 표지를 사용하면서 표준약관과 다르게 운용한 약관은 무효가 되며, 50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물게 된다.
공정위는 1995년 12월 '아파트표준공급계약서'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75개 표준약관을 승인·보급했다. 또 현실에 맞도록 표준약관을 총 79차례 개정했다.
표준약관 제정은 소비자 권익 제고에 기여해 왔다. 예컨대 지난해 확정된 '철도여객운송 표준약관'에 따라 파업 등 사업자 책임으로 열차 승차권이 취소되면 소비자는 환불 외에도 영수금액의 최대 10%까지 배상 받을 수 있게 됐다.
새로운 상품, 서비스가 만들어지면서 표준약관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공정위는 시장에 필요한 표준약관은 지속 제정·보급할 방침이지만 지나치게 표준약관이 많은 것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새로운 사업 분야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표준약관 제정으로 정부가 지나치게 시장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면서 “실제 소비자 불만이 많은 시장 등 필요한 부분에 한해 표준약관을 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