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능한 인력 자원과 두뇌를 자산으로 해서 발전해 온 우리나라는 과학 기술에 많은 비중을 두고 정책을 시행해 왔다. 정부 예산 가운데 연구개발(R&D) 예산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1~2위를 다툰다. 절대 규모도 5위권으로 높은 편이다.
국가가 기초 과학에 투자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해한다는 인류의 본질 가치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최고 수준의 기초 과학은 국력을 상징하고, 호기심 많고 창의력 강한 우수 인력 양성과도 연결된다.
상용 기술은 기업이 지금 필요로 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기술 수준 못지않게 시간, 즉 타이밍이 중요하다. 적기에 필요한 기술을 얻기 위해 자체 기술 개발뿐만 아니라 인수합병(M&A), 기술 이전, 국내외 공동 연구 등 다양한 방안을 기업 자율로 추진한다.
기초 연구를 통해 창출한 지식이 상용 기술로 전개되는 과정에서 응용 가능성이 명확하지 않거나 다양한 응용 분야에 적용될 수 있는 기반 단계를 원천 기술로 정의할 수 있다. 특정한 제품을 위한 기술로 발전한 경우에는 응용 기술로 본다. 국민을 대변하는 정부가 R&D의 수혜 당사자라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정부 R&D 지원 정책은 다양한 단계, 다양한 특성의 R&D를 거의 같은 틀에서 관리한다. 선진국을 모방하는 패스트 팔로어인 때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퍼스트 무버가 돼야 하는 지금은 변혁이 필요하다.
기초 과학과 상용 기술 R&D는 수행 주체에게 전권을 부여하고 정부는 지원과 성과 관리만 수행하는 연구자 중심 시스템이 바람직하다. 기초 과학은 일정 기준을 만족하는 연구자 전원이 자율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연구비 사용과 큰 틀에서의 성과 목표만 충실히 관리하면 같은 투자로 훨씬 높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원천 기술과 응용 기술 지원 관리는 정부 주도의 기획-선정-수행 체제가 필요하다. 다만 이 프로세스를 전문성이 부족한 정부나 전담 기관, 과제를 수행하고자 하는 일부 전문가 그룹이 주도하는 현실은 개선할 필요가 있다.
기술 수요를 제시하는 기획 과정과 기술을 공급하는 선정·수행 과정을 분리해 기획 과정에서 수혜자인 국민(정부)과 민간 산업체를 대표하는 전문가 및 현장의 연구자들이 모여 연구 주제, 기간, 성과 난이도 등을 결정하면 된다. 전담 기관은 이렇게 주어진 과제를 대상으로 연구자를 공모하고 선정하며, 추진 과정이나 성과를 관리하는 역할을 담당하면 될 것이다.
기획 과정에서 참여하는 전문가에게는 적절한 수준의 보수를 지급하고, 이후 과제 수행에는 참여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기획 과제를 결정하는 가장 큰 기준은 수요자인 국민과 기업의 이익에 비춘 수행의 필요성으로 하는 것이 좋다.
과학 기술 도약을 통해 우리만의 4차 산업혁명 모델을 확립하고, 이를 국가 발전의 발판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의 희망이다. R&D 과제를 단계별 특성에 맞게 맞춤형으로 지원하고 관리하는 정책 모델을 구축하는 한편 프로세스 전반을 민간 전문가들이 실제로 주도하고, 정부는 큰 틀에서 이들을 돕고 이끄는 양치기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특성이 다른 연구 과제들 간과 서로 다른 학문·기술 분야 간 시대·환경에 따른 주안점 및 투자 비중, 즉 포트폴리오를 결정하는 것은 정부의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이 될 것이다.
이병택 전남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btlee@chonna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