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는 새다. 척삭동물, 조류강, 기러기목에 속하는 분명한 새다. 그러나 오리는 새가 아닌 때도 있었다. 이웃나라 일본 얘기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불교의 영향으로 육식이 금기시 됐다. 그런 일본에서 오리는 드물게 오래전부터 먹어 온 육류다. 설날 요리에도 오리 가슴살 조림이 들어간다고 하니 이런 음식 문화는 어느 정도 보편화된 것으로 보인다.
육식이 금지된 가운데에서도 오리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된 데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동물성 단백질이 어느 정도 필요로 하던 무가(武家)나 막노동에 종사하던 서민층 등이 정당하게 육식할 수 있는 짐승을 찾는 와중에 오리 발의 물갈퀴에서 힌트를 얻었다는 것이다.
'물갈퀴가 있으니 오리는 물고기'라는 궤변을 만들어 낸 것이다. 종교상의 금기와 현실상의 타협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셈이다.
홍길동보다 더 억울했을 것 같은 '새가 아닌 오리'의 탄생 사연이다.
이런 경우는 멧돼지에서도 나타난다. 일본어로 멧돼지를 '야마구지라'라고 부르기도 한다. 직역하면 산고래(山鯨)라는 뜻이다. 에도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인은 땅 짐승의 고기를 먹는 것을 천하게 여겼다고 한다. 이 또한 종교 영향으로 보인다. 물론 고래도 포유류지만 바다에 살기 때문에 에도 시대 사람들은 '고래=물고기=먹어도 됨'이라는 등식을 만들어 낸 것이다.
토끼를 세는 데 쓰는 단위가 짐승을 세는 '필(匹)'이 아닌 '우(羽)'를 사용한 것도 같은 이유다. 귀가 커서 날개처럼 생겼다고 하여 토끼를 새라 우겼다고 한다. 오리 이후에 새까지 넓어진 식용 범위가 토끼 귀를 날개로 만들었다.
이들 세 가지 이야기는 '터무니없는 금기(또는 정책)가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보여 주는 사례'로 인용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비정상의 정상화'를 기치로 탈원전, 자립형 사립고 및 외국어고 폐지, 성과연봉제 폐기 등 다양한 정책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를 상징하는 정책들이다.
정권이 바뀌면 정책 기조가 달라지고 이에 따르는 변화와 혼란도 어느 정도는 불가피하지만 최근 이들 논란을 바라보면서 또 다른 '금지(혹은 규제)'의 그림자가 보이는 것 같다.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수정하고 보완해야 한다. 기자 역시 이들 정책에 대해서는 비판 시각이 있다. 새 정부도 정권 창출을 준비하며 많이 검토했고, 많은 전문가 의견도 검토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에너지 수급, 교육 및 공공 개혁은 정권과 관계없이 긴 안목에서 수립해야 하는 국가 기간 정책이다. 국민 모두의 생활에 직접, 그리고 큰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기 때문에 '기간(基幹)'이 붙는다. 그만큼 국민과의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
이전 정권의 가장 큰 오류는 이를 무시한 데서 비롯됐다.
인사청문회 걸림돌이 된 청와대 인사 원칙도 현실과 괴리된 잘못이 발견됐다면 수정하면 된다. 잘못된 원칙을 부여잡고 방어 논리만 찾을 필요는 없다. 임시방편은 항상 말 그대로 임시에 그친다. 잘못된 금기라면 '오리도 물고기'로 만드는 게 민중의 지혜고 무서움이다. 예외는 없다.
힘이 실릴 때 여러 과제를 해결하려는 조급함도 이해하지만 반대를 위한 반대까지도 충분히 경청해야 한다. 소수의 의견을 잘 반영하면서 다수의 의견을 실현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홍기범 금융/정책부 데스크 kbho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