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경쟁 '판'을 바꾸자]〈5·끝〉네거티브·사후규제 시급

2015년 국회입법조사처는 “(정부가) 요금의 적정성을 판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시장지배적 사업자 요금제 출시 이후 판매결과를 기초로 요금적정성을 심사해 약탈적 요소가 있을 경우 사후 규제하는 게 효과적이다”며 요금인가제 폐지를 권고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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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이동통신 산업이 처한 규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부는 이용자 차별과 후생저하, 시장교란을 우려해 사업자가 할 수 있는 일을 세세하게 규정한다. 이동통신서비스 사업자는 정부가 규정한 범주 내에서만 움직인다.

이통시장 경쟁 활성화를 위해 규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융합서비스 시대를 앞두고 이용자 후생과 서비스 혁신의 경기장을 넓혀야 한다. 이통산업에서도 원칙허용-예외금지를 규정하는 '네거티브', 기업 자율에 맡기되 사후처벌을 강화하는 '사후규제'를 확대해야 한다고 전문가는 조언한다.

이통사 자율경쟁과 혁신을 가로막는 불합리한 사전 규제를 선별해 개혁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요금인가제는 대표 사례다. 시장 지배적 사업자 SK텔레콤이 신규 서비스를 출시할 때 평균 2개월이 걸린다. KT와 LG유플러스는 신고사업자이지만, 경쟁 저해 또는 이용자 차별 요소가 발견하면 약관을 반려하는 방식으로 인가사업자와 사실상 유사한 규제를 적용받고 있다.

이같은 구조에서는 미국 스프린트가 선보인 것처럼 요금을 내려 상대편 가입자를 빼앗고, 빼앗긴 가입자를 되찾으려 공격과 수비를 주고받는 방식의 경쟁이 불가능하다.

소비자 후생 확대를 막아놓은 '제한선'도 다양하게 존재한다. 이동통신 단말기 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은 이통사가 지급하는 최대 지원금을 33만원으로 규정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결합상품 총 할인율 30%로 제한해 인가 심사에서 반영한다.

정부가 상한선을 규제하는 사례는 세계 시장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에선 갤럭시 신제품이 나올때마다 '1+1' 행사가 화제다. 미국은 결합상품에 최대 50%, 영국 버진 미디어는 41%까지 할인을 제공한다.

무분별한 할인이 산업 생태계를 교란시킬 우려는 분명히 존재한다. 거대 사업자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는 불공정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럼에도 예방적 사전규제로 요금혁신과 경쟁을 가로막기보다는 강력한 사후규제로 본보기를 만들 때 사업자가 두려워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미국 법무부(DoJ)는 1974년부터 제기된 AT&T 독점 논란에 8년 간 논의하고, 7개 지역전화회사와 장거리전화회사로 분할한 바 있다. 이 사례는 글로벌 통신 시장 전설이다. 미국 시장은 사후규제가 중심이지만 심각한 경쟁제한은 발생하지 않는다. 컴캐스트, 타임워너 등 케이블TV 사업자와 지역 이통사는 전국 이통사와 대등한 경쟁을 펼친다. 독점이 발생하면 언제라도 기업이 강제로 쪼개질 수 있다는 경각심이 뿌리깊이 박혀 있다.

한 번에 모든 규제 체계를 바꾸긴 어렵더라도, 우리나라 이통산업이 가야 할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고 전문가는 조언했다.

장석권 한양대 교수는 “이통 산업은 공공성을 갖춘 민간 서비스 산업의 대표 업종”이라면서 “투자와 경쟁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고, 산업 성장과 소비자 후생이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통신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