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나고야 의정서와 생물 다양성의 가치

안병옥 환경부 차관.
안병옥 환경부 차관.

19세기 독일 수학자 아우구스트 페르디난트 뫼비우스가 밝혀낸 뫼비우스의 띠는 사람들에게 수많은 영감을 준 2차원 도형이다. 시작과 끝, 바깥쪽과 안쪽의 경계가 없는 이 도형을 들여다보면 인류 발전을 위해 시작된 산업의 성장이 결국 생태계의 파괴로 이어져서 오히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게 되는 안타까운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세계는 지금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급격한 환경 변화를 겪고 있다. 과학자들은 약 1300만종에 이르는 지구 생물 가운데 매일 70종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는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서 생물 다양성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과오와 맞닿아 있다. 이에 따라서 생태계 조절, 의식주 지원, 문화와 휴식 제공 등 인류에게 다양한 혜택을 주는 생물 다양성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고, 보전을 위한 국제 사회와의 협력을 서둘러야 할 때다.

우리나라는 올해 8월 17일부터 나고야 의정서 당사국이 된다. 나고야 의정서는 생물 자원을 활용해서 발생하는 이익을 생물 자원 제공국과 이용국 양자가 공정하고 공평하게 나누자는 국제 협약이다. 이 협약은 인류가 생물 다양성을 보전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실천해 나가는 일에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해외 생물 자원 의존도가 50% 이상인 것으로 알려진 국내 바이오 산업계는 생물 자원 부국이 법 체계 정비를 통한 자국 이익 강화, 유전 자원 이용국이 자국 산업계의 부담 최소화에 각각 주력하고 있는 현실에 비춰볼 때 나고야 의정서 발효에 따르는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따라 국내 바이오 산업계는 세계 각국의 유전 자원에 대한 접근 및 이익 공유 관련 정보와 함께 수입 대체 생물 소재 발굴 관련 정부 차원의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마침 지난 6일 환경부 소속 기관인 국립생물자원관이 서울에서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나고야 의정서 당사국의 의정서 이행 관련 국제 선례를 살피고, 해외 생물 자원의 원활한 이용을 위한 세계 전문가들의 지혜를 모으기 위해서다. 이는 유전 자원 관련 국내외 정보의 취합, 조사, 제공을 담당하는 유전자원정보관리센터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초석을 닦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생물자원관은 캄보디아, 미얀마 등 생물 다양성이 세계에 풍부하지만 자국의 생물 자원 전문 지식과 연구 기반이 부족한 개발도상국과의 국제 협력 사업도 하고 있다. 사실 생물 다양성의 보전 가치가 큰 지역은 대부분 저개발국에 집중됐다. 이들 나라와의 협력과 원조는 생물 다양성 보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자 생물 다양성 협약 당사국의 의무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그 나라 자원의 발굴과 보전에 기여하면서 우리나라 생물 자원의 활용 기회를 넓혀 간다는 상생의 의미도 있다. 우리나라는 일방으로 실시하는 조사 연구나 단순한 시설 원조 등 낡은 개발 원조를 넘어 연구 과정과 결과를 협력국과 공유하고, 그 나라의 생물 다양성 관련 자료를 만들어 기증함으로써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생물 다양성을 지키는 일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뿐만 아니라 인류의 존엄과 미래를 지키는 일이다. 생물 다양성은 우리 혼자 지켜 낼 수가 없다. 나고야 의정서의 정착과 생물 다양성 보전을 위해서는 국제 사회가 한 몸으로 노력해야 한다.

환경부는 생물 자원 조사와 정보 교류 등 국가 간 협력을 넓혀 나가고 있다. 이와 함께 산업계, 학계, 연구기관은 물론 미래 환경을 생각하는 개개인과 자라나는 미래 세대가 활발히 교류하도록 지원한다.

뫼비우스의 띠는 모든 생명은 이어져 있으며, 생물 다양성 파괴의 원인은 인간에게 있지만 그 해결책 또한 인간에게 있다는 점을 의미하는 지도 모른다.

안병옥 환경부 차관 ahnbo21@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