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회사 대표 K는 잘나간다. 대기업 시절 그는 '초고속 승진' '최연소 임원' 타이틀을 달았다. 독립해서 차린 회사는 상장되면서 수백억원을 벌었다. 그는 동기 모임에 나올 때마다 회식비용을 선뜻 계산한다. 친구들은 '성공한 친구' '돈 쓸 줄 아는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부잣집 곳간에서 인심 나고, 칭찬이 넘친다.
그는 친구들에게 술을 자주 샀고 부탁을 외면하지 않았다. 가전 대리점을 하는 친구에게 제품을 샀으며 보험사 친구에게 보험을 들었다. 있을 때 베풀겠다는 부자철학에 신이 난 건 주변인이다.
지난 모임에 그가 불참했다. 그를 두고 험담이 나왔다. 한 친구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그의 선심과 친절은 법인카드가 하는 것이지, 그가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남의 돈으로 생색낸다고 했다. 그는 최근 K가 20년 결혼 생활을 끝냈다는 소식도 전했다. 잠자코 있던 다른 친구가 기다렸다는 듯이 한술 더 떴다. 그가 지방대 출신이었다는 것, 어려운 가정에서 자랐다는 것, 처가가 부자였다는 소리를 했다.
험담은 '찌라시' 수준이 됐다. 각자 조금씩 알고 있는 어설픈 정보를 악의로 짜깁기하니 영락없는 '찌라시'가 나왔다. '볼품없는 지방대 출신 청년이 부잣집 사위가 되어 승승장구' '이혼했기에 조만간 추락할 것'이라는 근사한 서사구조가 짜였다. '흙수저 성공'이라 인정하면 될 것을 결론은 '흙수저 추락'이다. 그들이 K에게 밥을 얻어먹었나 싶다.
또 다른 모임에서는 예쁜 여자 동기가 도마 위에 올랐다. 어릴 때 모습과 많이 달라진 외모가 탈이다. 여자의 변신이 무죄라는 건, 광고 카피에서나 나올 말이지 현실에서는 몽땅 '죄'다. 성형의혹이 흘러 나왔다. 여자 변신을 돕는 장치는 무궁무진하다. 재미있는 것은 화장으로 가려지는 기술에 대해서는 관대하면서 의술의 혜택은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다. 예전 사진을 들고 와서 달라진 외모를 대조하듯 들이대는 친구에게 한마디 했다.
“너도 성형해봐, 걔처럼 되는지.”
'부러우면 지는 거야'란 말이 유행한다. 부럽지만 네 앞에선 감정을 드러내지 않겠다는, 내 자존심까지 잃지 않겠다는 뜻일 게다. 그럴까. 부러움을 감춘다고 상대를 이길 수 없다. 부러운 걸 감추다 보면 열등의식과 자기 비하라는 또다른 갈등으로 힘들어진다. '나는 왜 쟤보다 못할까' '나는 왜 그가 가진 걸 못 가진 걸까' '나는 왜 능력이 없는 걸까' 차라리 부럽다 하고 박수를 보내면 편하겠지만.
“우리에게 가장 견디기 힘든 성공은 가까운 친구의 성공이다.” 알랭드 보통은 '불안'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가까운 사람의 성공에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내가 그보다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이다. 질투, 시기를 험담으로 풀어낸들 내 안의 불안이 사라질까.
부러워할 만한 점을 가진 사람,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대가에 대한 존중이 없다면 자기성장도 없다. 부자나라를 부러워하고 부자가 된 사람을 선망해야 이기고 싶은 열정이 생긴다.
우리가 아는 부자 중 대부분은 자수성가 모델이다. 겉으로 보기에 운이 따라서 쉽게 성공한 것 같지만 그런 운도 노력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결과물이란 걸 알아야 한다. 남의 성취를 인정하고 부러워하는 것은 쿨(Cool)한 행동이다.
질투는 양날의 칼이다. 나를 자극해 성장 동력으로 쓰지 않는 한, 남을 찌르는 루저(loser)의 한심한 공격일 뿐이다. 그 칼이 나와 내 주변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문화칼럼니스트 sarahs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