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가 인간 바둑계 최고수 이세돌과 커제를 연거푸 제압한 사건은 인공지능(AI)이 가져올 엄청난 사회 변화의 예고편이었다. 바둑이라는 한 분야에서 인류가 수천년 쌓아 온 경험과 지식을 짧은 시간에 체득, 최고 고수를 물리친 사실을 다른 분야로 수평 이동해 보면 공포가 느껴진다.
AI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4차 산업혁명이 언급되면서 가장 궁합이 맞고 관심을 끄는 분야로 의료가 언급된다. 실제로 의료 분야에선 AI를 기반으로 한 질환 진단·예측·정확도를 개선했다는 논문이 하루에도 수십 편씩 쏟아지고 있다.
관련 혁신 서비스도 수많은 기업에서 수없이 시도되고 있다. 좋든 싫든 AI 시대를 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현실 고민을 해야 한다.
알파고에서 보듯 AI의 특징을 뛰어난 전문가가 축적한 '막대한 양의 고급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르게 문제를 풀어 가는 것'이라고 한다면 경쟁력의 핵심은 차원 높은 수많은 시도와 문제를 푸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지난해 말 구글이 미국 의학 잡지 JAMA에 발표한 당뇨성 망막병증 진단을 보면 망막병증 사진 13만장이 사용된 가운데 수많은 시도를 거쳐 10대 안과 질환의 하나인 망막 질환, 그 가운데에서도 당뇨성 망막병증 진단에 해당하는 답만을 얻게 된 것이다. 이런 연구가 무수히 진행돼야 망막질환 전체의 진단·치료·예측이 가능해지고, 또 같은 시도가 무수히 반복돼야만 안과질환을 정복하게 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IBM왓슨도 암 분야 세계 최고인 메모리얼슬로운케터링이 큐레이션한 문헌과 290권이 넘는 의학 잡지, 200권 이상의 교과서, 1200만쪽 분량의 텍스트를 기반으로 여러 질환 가운데 하나인 암에 대해 답을 추론하는 등 경쟁력을 높여 가고 있다.
즉 의료 분야만 하더라도 수많은 시도를 전략 차원에서 묶어 내야 한 분야에서 경쟁력을 얻게 된다는 뜻이다. 산발 시도는 학문 가치나 부분 사업화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의미 있는 분야에서 기술 경쟁력 확보와 경제 이득 취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AI 시대에는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이 좁혀진다.
첫째 막대한 양, 그것도 양질의 데이터가 필요하다. 데이터가 많다고 하는 의료 분야에서도 데이터 개방 문제는 물론 데이터 통합을 위한 표준화, 데이터의 정합성, 미래 의료를 위한 데이터 확보 등 많은 문제를 풀어야 한다. 이미 넘치는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영역도 있겠지만 의미 있는 연구개발(R&D)을 위해 필요한 데이터를 우선 확보해야 한다.
둘째 데이터 분석 능력이다. 알파고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AI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현장에서 전통 방법과 머신러닝을 기반으로 데이터를 해석하고 분석 모델을 만들 수 있는 경험 있는 데이터 전문가를 찾기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우리도 더 늦기 전에 전문 기관으로 하여금 각 분야의 데이터 전문가를 양성하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셋째 특정 분야의 경쟁력을 높이는 선택형 전략이다. 수많은 시도는 인류가 상당 기간 쌓아 온 차원 높은 경험을 의미하고, 전략 선택이란 차별화된 분야를 선택하는 것이다. 알파고의 바둑이나 IBM왓슨의 온콜로지를 의미한다. 산발 연구는 학문의 의미와 성과는 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산업 의미나 경쟁력 확보에는 부족하다.
이런 노력 없이 시간이 흐르면 핵심 모델과 알고리즘은 또 글로벌 기업에 종속될 것이고, 점점 우리가 할 수 있는 영역은 좁아들 것이다. 그런 시기가 닥치기 전에 올바른 노력이 필요하다. AI 미래는 전문가의 지혜와 노력은 물론 국가 기술 정책과 투자와 맞물려 있다. 올바른 선택과 노력으로 AI 미래를 대비하고 국가 발전의 초석이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상은 연세의료원 산학융복합의료센터 교수 SELEE11@yuhs.ac
-
김현민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