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협상의 기술

[기자수첩]협상의 기술

로버트 보돈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는 협상의 세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바로 △설득보다 '경청'이 먼저임을 명심할 것 △상대방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 하나는 반드시 반대급부로 제시할 것 △제대로 된 협상은 파이를 나누는 게 아니라 키우는 '윈-윈'이라는 점을 인식할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선택약정 할인율 25%에 이어 보편 요금제를 입법 예고했다. 정부가 마련한 4조6000억원대 통신비 정책을 실행할 주체는 이동통신서비스 사업자라는 점에서 이통사와의 협상은 필수다.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도 이통 3사 최고경영자(CEO)들을 만나는 등 자세는 좋았다.

그러나 과기정통부의 통신비 정책 추진 과정을 보면 협상 자세에 문제가 있다.

우선 경청하는 자세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통사는 통신비 인하 정책으로 말미암아 재정 부문의 타격이 크다며 정확한 효과와 손실을 따져보자고 한다.

지난해 통신 3사의 영업이익은 3조7000억원이다. 통신비 인하 정책으로 연간 9000억원이 적자가 발생한다. 과기정통부는 객관적 데이터를 놓고 이통사와 다투기라도 해야 했지만 경청은 없었다.

이통사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하려는 노력을 했는지 의문이다. 과기정통부는 이통사에 통신비 인하 부담을 전가하며 주파수 비용 합리화 등 이통사가 원하는 부담 완화 방안은 묻지도, 제시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통신비 인하가 과연 정부, 이통사, 국민 모두에게 윈-윈하는 결과를 가져올지 의문이다. 이통사의 매출 감소로 인한 투자와 마케팅 여력 저하는 물론 단말 구매가격이 오르는 등 어떤 방향으로든 풍선효과가 예상된다.

보돈 교수가 제시한 협상의 3원칙 가운데 가장 공감되는 가치는 '경청'이다. 정부도 사회 논의기구를 통해 이통사 이야기를 듣겠다고 했다.

그러나 과기정통부는 25% 선택약정 할인율 반발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보편요금제를 전격 입법 예고했다. 이통사를 협상 대상으로조차 여기지 않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