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네이버가 자회사 라인을 미국 뉴욕과 일본 도쿄 증시에 동시 상장한 뒤 이어진 기자간담회장. 이날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는 구글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당시 구글의 지도 데이터 국외 반출 요구와 관련해 “구글이 한국 지도 데이터를 활용하려면 국내에 서버를 두고 세금부터 제대로 내야 한다”고 성토했다. 그는 “구글, 유튜브, 페이스북이 국내에서 얼마를 버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국내 업체들이 불공정한 싸움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기업 조세 회피에 국내 기업 경쟁력 저하(?)
글로벌 기업의 조세 회피는 국가 재정 수입만의 문제가 아니라 역차별 대표 사례로 꼽힌다. 국내 기업 경쟁력 저하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인수합병(M&A), 기술투자 등 미래 먹거리를 위한 국경 없는 경쟁에서 해외 기업과의 격차가 벌어지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실탄' 문제다.
2015년 이만우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2013년 국내에서 매출을 올린 해외 법인 9532개사의 법인세 납부 실적을 공개한 결과 전체의 절반(49.9%)인 4752개 기업이 한국 정부에 법인세를 단 1원도 납부하지 않았다. 이 가운데 연매출 1조원 이상 기업은 15개사, 5000억~1조원 미만 기업은 17개사에 이른다. 어떤 회사가 리스트에 포함됐는지 여부는 공개되지 않았다. 세금을 납부한 경우에도 국내에서 올린 매출에 비례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최대 22%에 이르는 법인세를 내야 하는 국내 기업은 실탄 싸움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페이스북은 매출 21.4%, 구글은 15.6%, 아마존은 11.8%를 각각 연구개발(R&D)에 사용했다. 단순 매출 대비 R&D비 비중을 비교해도 국내 인터넷 기업 가운데 이와 견줄 만한 곳은 네이버(25.1%)를 제외하고 없다. 카카오는 지난해 매출 대비 R&D비 비중이 7.2%에 그쳤다. 절대 액수에서는 국내외 기업 격차가 더욱 크게 벌어진다.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관계자는 “지속된 기술 투자가 필요한 ICT 영역에서 투자 금액의 차이는 성장 속도 차이로 이어진다”면서 “글로벌 기업이 해마다 수천억원에 이르는 세금을 절약해서 기술 개발에 재투자하면 그만큼 국내 기업은 불리한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기울어진 인터넷 세상]<1>글로벌 기업 조세 회피, 국내 기업 경쟁력 저하](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17/08/28/article_28091507274254.jpg)
◇조세 회피 어떤 식으로 이뤄지나
글로벌 기업의 조세 회피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이뤄진다. 국내에 고정 사업장을 설립하지 않고 최소 기능만 수행하는 대리 회사를 내세워 국내 과세가 가능한 이익 자체를 줄이는 방식을 활용한다. 외견상 주요 영업 활동이 해외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실소득에 세금을 매기기 어렵다. '고정 사업장 과세 원칙'에 따라 외국 기업이 국내 고정 시설을 둔 사업장이 없으면 소득에 과세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기업의 경우 서버가 고정 사업장에 해당한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블리자드 등 글로벌 기업 상당수가 국내에 서버를 두지 않은 데다 유한회사 형태로 들어와 공시·감사 의무도 없다.
여기에 세율이 낮은 국가에 실제로 영업 활동을 하지 않는 명목뿐인 회사를 설립한 뒤 지식재산권(IP), 이자, 배당 등을 통해 소득을 집중하는 방식이 결합된다. 저세율 국가에 소득을 몰아주고 전체를 납부하는 세금을 줄이는 것이다. 글로벌 기업 상당수가 세율이 낮은 아일랜드에 명목회사를 세운다. 상표권 등 IP를 이 법인으로 이전한다. 세계 각국에 있는 관계 회사에서 IP 로열티를 지급, 수익이 아일랜드에 집중된다. 그만큼 세율이 높은 다른 관계 회사의 매출 규모는 줄어듦으로써 세금 부담이 경감된다. 흔히 '더블 아이리시'라 부르는 방식이다. 구글 외에도 애플, 페이스북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 다수가 이용한다.
◇국내 구글세 도입 시도 있었지만 실패
이런 방식으로 조세 회피가 이뤄지지만 개별 국가 차원에서 대응하기는 쉽지 않다. 각국의 조세 관련 법과 국가 간 협정을 적절히(?) 이용한 것으로, 불법은 아니다. 구글코리아 측이 “구글은 한국 법을 준수해 세금을 납부하고 있으며, 국세청 감사 결과 법을 준수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인터넷 사업 영역은 특성상 조세 회피 대응이 더욱 어렵다. 인터넷을 이용한 디지털 거래가 실물 형태가 없고 국경 간 이동이 자유롭기 때문이다. 사업 국가마다 고정 사업장을 마련할 필요도 없다. 개별 국가 입장에서 거래 정보 파악이 어렵다.
국내에서도 글로벌 기업의 조세 회피를 막기 위한 '구글세' 도입 시도가 있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2014년 홍지만 의원(새누리당)이 구글과 페이스북 등 글로벌 인터넷 기업에 세금을 물리는 '법인세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심사 단계에 머물러 있다가 19대 국회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개정안은 국내에서 애플리케이션(앱), 소프트웨어(SW) 제품이 판매된 경우 이를 외국 법인의 국내 원천 소득으로 보고 과세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BEPS, 조세 회피 바로잡을 물꼬 될까
개별 국가 차원에서 대응이 어려워지면서 국가 간 협력을 통해 글로벌 기업의 역외 탈세 문제에 대응하려는 시도가 탄력을 받고 있다. 정부는 6월 프랑스 파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본부에서 '국가 간 소득 이전을 통한 세원 잠식'(BEPS) 방지 다자협약에 서명했다. BEPS는 다국적기업의 역외 탈세를 차단하기 위한 국제 공조 체제다. 2015년 말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승인됐다.
OECD 회원국을 포함해 BEPS에 동참하는 68개국이 서명을 완료하면 이들 국가 간 조세조약은 별도의 양자 협상 없이 다자 협약을 통해 개정 사항이 자동 반영된다. 글로벌 기업 거래가 특정 국가 간에 체결된 비과세·저율과세 혜택을 받기 위한 목적인 경우 조약 혜택을 부인할 수 있는 규정이 도입된다. 조세 조약을 악용한 조세 회피 방지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국회 비준 등 절차를 거쳐 협약 내용을 적용한다.
그러나 BEPS가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다. 국가 간 협약인 만큼 동참하지 않는 국가에 강제할 권한이 없다는 한계도 있다. 정보 공개 의무가 없는 유한회사의 특성상 글로벌 기업이 국내에서 제대로 세금을 내고 있는지를 파악하기란 어렵다. 한국무선인터넷산업연합회에 따르면 구글과 애플은 지난해 앱 마켓을 통해 각각 1조3396억원, 6061억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대부분 국내 매출이 아닌 해외 매출로 인식되기 때문에 정확한 규모 산정이 쉽지 않다. 과세 과정에서 불거질 수 있는 미국과의 통상 마찰을 풀어 내는 것도 숙제다.
오대석기자 od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