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심 판결에서 5년형을 받았다. 삼성은 총수 부재 장기화에 따른 '경영 리스크'를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재계와 산업계는 위기 경영 속에서도 '미래 투자'의 끈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차세대 기술 발굴과 신사업 추진을 지속할 수 있는 시스템 확립에 방점을 찍어야한다는 주문이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의 경영 공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 부회장이 징역 5년형을 받자마자 변호인 측은 즉각 항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부회장이 2심에서 무죄나 집행 유예를 받는다고 가정하더라도 수개월 간 총수 부재는 막을 수 없다. 이 부회장이 풀려나더라도 특검 항소가 이어질 것으로 보여 삼성은 총수 빈자리를 오랫동안 지켜봐야하는 입장이다.
삼성이 계열사 독자 경영 방식으로 전환한 후 당장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니다. 지난 2월 이 부회장이 구속된 뒤에도 6개월 간 삼성의 '시스템'이 작동해 총수 부재 여파를 최소화했다.
삼성그룹 맏형 격인 삼성전자는 권오현 부회장, 윤부근 사장, 신종균 사장 등 3인 전문 경영인 체제를 지속할 전망이다. 총수가 부재한 상황을 맞은 삼성 그룹은 안전 경영을 위해 계열사 최고경영진도 현 체제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안전 경영' 시스템이 언제까지 작동하느냐는 것이다. 삼성은 통상 12월에 단행했던 사장단 인사도 무기한 연기했다. 항소심 준비 등 일정을 고려하면 올해 말까지 사장단 인사는 힘들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재계 관계자는 “사장단 인사를 하려면 먼저 회사 전략이나 방향이 나오고 큰 틀에서 전체 계열사를 놓고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한다”면서 “이처럼 방대한 작업을 할 사람은 지금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시스템 경영 덕분에 삼성전자 사업은 흔들리지 않았다. 반도체 초호황과 맞물리며 2분기 사상 최고 실적을 거뒀다. 반도체 호황이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예상돼 실적 호조도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문제는 미래다. 반도체 호황 덕에 이어온 실적 고공 행진은 언제든 꺾일 수 있다. 이때를 대비한 미래 전략을 수립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금융이나 중공업 등 다른 계열사도 시장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전략을 구축해야한다.
중장기 먹거리는 더 큰 고민거리다. 삼성전자가 기술을 확보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내부 연구개발(R&D)로 기술을 축적하거나 외부에서 기술을 흡수하는 방법이다. 기존 내부 R&D를 통해 기술을 쌓았지만 최근 상황이 바뀌었다. 시장이 급변하면서 발 빠른 대응 없이는 생존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삼성은 뛰어난 기술을 지닌 기업을 인수합병(M&A)하거나 지분 투자하는 방식으로 기술 확보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부터 두드러진 새로운 삼성 전략이다.
이 부회장 구속 후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해까지는 하만과 같은 큰 기업도 시기적절하게 M&A하는 등 신속한 의사 결정이 가능했다. 지금은 그 의사 결정 시스템이 멈춘 상태다.
1분기 삼성전자가 M&A한 기업은 하나도 없다. 2분기에 1건 진행했지만, 직원 수 7명의 소규모 회사다. 사업부에서 결정할 수 있는 소규모 인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실제 M&A가 몇 건 더 진행되지만 모두 작은 스타트업 정도”라면서 “하만과 같이 수조원이 들어가는 M&A는 윗선 의사 결정이 부재한 상태에서 추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총수 부재로 인한 의사결정 지연은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다른 대기업도 구속 등으로 총수가 부재한 상황에서는 의사결정이 지연되면서 투자나 M&A를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다.
4차 산업 혁명에 대한 대응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 해외 기업은 앞다퉈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에 투자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2020년까지 모든 기기에 IoT와 AI를 적용하는 청사진은 그려놨다. 하지만 이를 추진할 동력이 총수가 부재한 상황에서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술 투자와 사업 전략이 뒷받침해야하지만 지금 삼성은 이를 실천하기 힘들 것”이라면서 “경영 공백에 따른 사업 시행 속도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삼성의 4차 산업혁명 대응이 늦어질수록 국가 경쟁력 확보에도 적신호가 켜질 것이란 의견도 있다. 특검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18%를 차지하고 있는 1등 기업”이라고 삼성의 책임을 강조했던 것처럼 삼성의 경쟁력 하락은 국내 경제에 큰 영향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브랜드 가치도 떨어질 수 있다. 인터브랜드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 브랜드 가치는 58조5000억원 수준이다. 세계 7위 수준이지만 이번 판결 후 삼성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해외 소비자에게는 삼성의 불법 행위가 신뢰도 추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경영 공백에 따른 삼성의 총체적 난국을 타개하려면 지속적인 미래 투자와 브랜드 이미지 관리에 집중해야할 것”이라면서 “총수 부재라는 리스크가 삼성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할 시스템을 준비해야한다”고 밝혔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