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부재 장기화…선장 없는 '삼성호' 후폭풍 우려

총수 부재 장기화…선장 없는 '삼성호' 후폭풍 우려

이재용 부회장에게 징역 5년 실형이 선고되면서 삼성은 총수 부재 장기화라는 악재를 만났다. 삼성은 재판 결과에 대한 공식반응을 내놓지 않았지만, 당혹스런 분위기는 감추지 못했다. 그동안 전문경영인을 중심으로 한 시스템 경영으로 총수 부재에 대처해왔지만, 투자와 인수합병(M&A)을 통한 미래 먹거리 발굴에 차질이 우려된다.

27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은 이 부회장 부재에 따라 계열사별 각자경영 체제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은 재판 결과에 대한 별다른 반응은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특검이 제기한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된 것에 대해 당혹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삼성 관계자는 “특검이 이 부회장에게 적용한 5가지 공소사실이 모두 유죄로 판단됐다는 것이 충격적”이라면서 “최지성 전 부회장과 장충기 전 사장까지 구속한 것도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총수 부재 장기화…선장 없는 '삼성호' 후폭풍 우려

재계도 놀랍다는 반응이다.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재판부가 (대통령) 강요에 의해 (뇌물을) 제공했다고 보면서도 5년 실형을 선고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삼성과 특검 모두 항소 뜻을 밝힌 만큼 법정 공방은 계속될 전망이다. 하지만 2심과 3심에 각각 4개월씩 걸리는 만큼 최소 내년 상반기까지 불확실성이 불가피하다.

삼성은 큰 변화 없이 현재처럼 비상경영 체제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룹 맏형 격인 삼성전자는 권오현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부회장), 윤부근 소비자가전(CE) 부문장(사장), 신종균 IT·모바일 부문장(사장) 3인 대표이사 체제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타 계열사도 각 사 대표이사를 중심으로 독자 경영체제를 지속해야 한다.

삼성이 시스템 경영체제를 갖췄고, 계열사 각자 경영체제도 안정화돼 총수 부재에 따른 단기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총수 부재 속에서도 삼성전자가 2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두고, 계열사 실적도 전반적으로 상승하는 등 안정적 경영을 이어가는 이유다.

총수 부재가 장기화되면 이야기가 다르다. 비상경영으로 버티는 데는 한계가 있다. 현 체제에서는 중장기 사업전략을 만들고, 과감한 투자에 나서기 어렵다. 결국 총수 부재가 길어질수록 삼성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

파이낸셜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가디언, 뉴욕타임스 등 주요 외신이 삼성의 장기 전략에 우려를 표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사업 실적이 워낙 좋아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곳곳에서 위기 신호가 감지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연말 정기 사장단 인사를 실시하지 않았고, 올해 초 임원인사도 최소한으로 했다. 내부에서는 인사 병목 현상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삼성 한 관계자는 “승진해야 할 사람은 승진을 못했고, 퇴임해야 할 사람도 여전히 남아 있다”면서 “조직에 역동성이 약해졌다”고 평가했다.

더 큰 문제는 미래 먹거리 발굴이다. 이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삼성전자는 투자와 M&A를 통해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고, 미래 먹거리를 준비해왔다. 삼성페이, 인공지능, 사물인터넷(IoT), 전장사업 등 현재 삼성전자 핵심 경쟁력이 된 기술에 M&A가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전문경영인 체제에서는 과감한 투자와 M&A 결정이 어렵다.

삼성 고위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굵직한 경영상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서 “당장은 큰 영향이 없어 보이지만, 지금 제대로 못한 투자는 2~3년 후 미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권건호 전자산업 전문기자 wingh1@etnews.com,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