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4조6000억원대 통신비 절감 대책을 발표한 이후 이동전화 '단말기 완전자급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동통신사는 통신비 인하 책임과 부담이 이통사에만 전가되는 것이 부당하다고 지적하고 차라리 단말 유통을 포기하겠다며 관련 논의를 제안했다.
국회와 정부가 단말기 완전자급제에 대한 타당성과 입법 논의에 들어가면서 통신 시장 유통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제시됐다.
◇단말기 자급제, 유통경쟁 활성화·마케팅비 절감 효과 기대
단말기 자급제는 통신 시장에 다양한 단말기 유통 주체를 진입시켜서 가격 경쟁을 유도하는 한편 과도한 유통비용을 줄여서 소비자 혜택으로 돌리기 위한 정책이다.
단말기 자급제가 활성화되면 제조사가 이통사를 건너뛰고 단말기를 판매점에 직접 도매가로 판매하는 영업이 활성화되면서 가격 경쟁이 발생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통사가 유통망을 관리하기 위해 투입하던 2조~7조원에 이르는 마케팅 비용을 줄여서 소비자 혜택으로 돌리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정부는 옛 방송통신위원회 시절부터 단말기 자급제 활성화 정책을 지속 추진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랜 기간 고착된 유통 구조 탓이다.
우리나라는 휴대폰 이용자 90% 이상이 이통사 대리점 또는 판매점을 통해 단말기를 구매하는 독점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 반면에 미국은 64%, 서유럽 56%, 중국은 30% 가입자만 이통사 유통망에서 단말기를 구입한다.
◇단말기 완전자급제, 아이디어 경쟁
단말기 완전자급제는 자급제 활성화 속도를 높이기 위해 정부가 이통사의 휴대폰 유통을 법률로 제한, 단말기 유통과 이통 서비스 판매를 완전히 분리시키는 제도다.
유통 현장에 존재하는 이통사, 직영점과 대리점, 판매점, 제조사 유통점, 대형마트 유통점, 대형 가전 전문 양판점 등 주체를 어디까지 참여시킬지를 두고 다양한 아이디어가 제시됐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비례)은 '(병행형) 단말기 완전자급제' 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김성태 의원의 안은 이통사 서비스 가입과 단말기 유통을 완전 분리하되 중소 유통점에 한해 단말기 판매 및 서비스 가입을 동시에 허용한다. 이통사 대리점과 직영점은 단말 판매가 금지되고, 대형 제조사와 유통점은 서비스 가입이 금지된다. 중소 유통업자에 단말기 공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유통전문회사'도 설립한다.
김성태 의원실 관계자는 “단말-서비스 유통 분리를 통한 마케팅비 절감과 소비자 선택권 확대 효과가 기대된다”면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중소판매점의 활동 범위를 넓혀 단말기 판매와 서비스 가입 분리로 인한 이용자 불편 해소에 초점을 뒀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선 19대 국회에서 전병헌 전 의원(현 청와대 정무수석)이 발의한 '제한형 완전자급제'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제한형 완전자급제는 이통사 자회사와 대리점 및 직영점의 단말기 유통을 원천 차단하고, 대형 제조사의 단말기 유통도 금지한다.
일반 중소상공인 유통점을 보호하기 위해 제조사와 전속 계약 등 특수 관계를 맺은 판매점, 대형 유통점은 단말기 판매 허용에서 배제한다.
일반 중소 유통점만 단말기 판매가 가능하며,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해 대기업의 시장 진입을 행정조치로 차단한다. 김성태 의원 안에 비해 중소유통점 보호를 강화했다.
안정상 더민주 수석전문위원은 “제한형 완전자급제는 완전자급제에 가장 근접한 유형”이라면서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중소 유통점의 생존권 보호에 초점을 뒀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는 현행 단말기 유통 틀에서 이통사-제조사 등 유통망별 차별을 없애 달라는 논의를 촉발했다.
녹색소비자연대는 삼성전자 갤럭시S8 등 제조사가 직접 판매하는 휴대폰 출고가를 이통사 약정보다 약 10% 비싸게 책정한 유통 정책을 시정해 달라면서 공정거래위원회에 조사를 요청했다.
공정위의 제재가 현실화되면 현재 핀란드가 시행하고 있는 '단말기 가격 비차별 자급제'가 제도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밖에도 현행 단말기 유통의 틀을 유지하되 이통사의 단말 유통 자회사를 매각, 유통 부문의 영향력을 줄이는 방안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완전자급제 둘러싼 '신중론'도 확산
일각에선 시장 경쟁 결과물인 단말기 유통 구조를 정부가 인위로 변화시키려는 논의에 대해 반발하는 기류도 감지됐다.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는 “단말기 완전자급제 논의를 보면 이통사가 마치 가계통신비 증대의 주범이 유통망이고, 자급제만 되면 가계통신비 문제가 해결될 듯한 메시지를 던지면서 사전 작업을 하고 있다”면서 “법률로 자급제를 강제하는 것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민철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연구위원은 “해외는 자생적으로 단말기 자급제가 활성화된 것으로 완전자급제와 같은 인위적 정책의 결과물로 보기 어렵다”면서 “법률적 문제도 꼼꼼히 검토하면서 시장에 충격이 가지 않도록 단계적으로 자급제가 활성화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한다”고 말했다.
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