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과 방송은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이자 인프라다. 20배 빠른 5세대(5G) 네트워크와 초고화질(UHD) 인프라를 기반으로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빅데이터,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등 미래 기술이 융합go 이제까지 없던 새로운 서비스와 가치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우리나라 통신·방송 관련 법·제도는 기업 혁신 동력을 제대로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
◇통신·방송 규제개혁, 왜 필요한가
신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규제가 무엇인지를 면밀히 파악해tj 하나씩 해소하는 것을 시작으로 규제 전반의 틀을 원칙 허용·예외 금지·사후 규제 위주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
글로벌 통신방송 인프라 활용도를 평가하는 2015년 '세계경제포럼(WEF) 네트워크 준비지수'에서 우리나라는 '사업·혁신 환경' 항목에서 16위를 차지했지만 '정치·규제 환경'은 26위를 기록했다. 기업의 혁신 노력과 아이디어는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평가됐지만 규제 환경이 따라잡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줬다.
2009년 아이폰 상륙을 앞두고 발생한 '위피(WIPI)' 논란이 대표 사례다. 당시까지만 해도 독자 콘텐츠 규격인 위피를 탑재해야 국내 휴대폰 출시가 가능했다. 그 결과 아이폰과 같은 스마트폰 출시가 지연됐다. 위피는 글로벌 스마트폰 충격에서 휴대폰 사업을 보호하는 측면도 있었지만 급변하는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 대한 대응시간을 늦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처럼 경직된 규제는 통신·방송 산업 경쟁력을 저하시키고 그 결과 이용자 후생을 낮추는 부작용으로 이어진다.
◇신산업 가로막는 규제 산적
우리나라 규제 환경을 면밀히 분석, 혁신 서비스 출현을 가로막는 규제가 무엇인지 점검하고 개선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위치정보도 관련 규제는 IoT산업 활성화를 가로막는 대표 사례다. 우리나라에서는 구글맵 또는 애플 맵을 온전히 사용할 수 없다. IoT사업을 영위하는 중소, 벤처기업은 IoT 자체에 대해서는 허가가 필요 없지만 사실상 대부분 IoT사업에 위치정보가 포함되기 때문에 방송통신위원회에 등록 또는 허가를 받아야 한다.
국내에서 활용 가능한 위치정보는 글로벌 기준에 비춰 매우 제한적이다. 위치정보보호법은 위치정보를 이동성이 있는 물건 또는 개인의 특정 시간대 위치에 관한 정보로 규정, 활용을 위해서는 이용자의 '사전동의(Opt-in)'를 필요로 한다. 익명화된 개인정보나 단순 위치정보, 사물정보까지 위치정보 수집의 규제 대상이 된다.
반면에 미국은 이용자가 사후 거부권(Opt-out)을 행사할 수 있으며, 익명 위치정보는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개인 정보가 담기지 않은 위치정보가 빅데이터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율주행차, 드론, 의료IT, 핀테크, AI, 로봇 등 혁신 산업에서 위치정보는 기반기술 역할을 한다. 우리 기업은 출발선에서부터 외국 기업에 비해 적은 양의 데이터로 서비스를 개발해야 하는 실정이다.
개인정보보호와 전자상거래 등 정보통신기술(ICT) 융합 분야에서 위치정보와 같이 사전동의를 통한 경직된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용자 후생 저하하는 규제, '네거티브'로 전환해야
통신과 방송서비스 분야에서 요금인가제는 과도한 규제가 이용자 후생을 저하시키는 대표 사례로 꼽힌다. 정부는 이용자 차별과 후생저하, 시장교란을 우려해 사업자가 할 수 있는 일을 세세하게 규정한다.
요금인가제는 과도한 할인으로 경쟁사 추격을 봉쇄하는 '약탈 요소'가 없는지 점검하는 것이 목표다. 시장 지배 사업자인 SK텔레콤은 신규 서비스를 출시할 때 평균 2개월이 걸린다. KT와 LG유플러스는 신고사업자이지만 사실상 유사한 방식으로 규제를 적용받는다.
이 같은 구조에서는 미국 스프린트가 선보인 것처럼 요금을 내려 상대편 가입자를 빼앗고, 빼앗긴 가입자를 되찾기 위해 공격과 수비를 주고받는 방식의 경쟁이 불가능하다.
방송 서비스 분야에서도 이 같은 일은 빈번하게 발생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방송·통신 결합상품 총 할인율을 30%로 제한해 인가 심사에서 반영, 지나친 할인을 막고 있다. 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필요한 부분도 있지만 4차 산업혁명을 위한 글로벌 경쟁이 가속화되는 현 시점에서는 규제 방향성을 다르게 설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방법이 없지 않다. 예방 차원의 사전 규제로 혁신과 경쟁을 가로막는 대신, 최대한 자유를 보장하고 강력한 사후 규제로 본보기를 만들어야 한다. 규제 해소에 따른 부작용 예방책으로 사후 규제에는 소비자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등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손꼽힌다.
신민수 한양대 교수는 “급속한 변화가 발생하는 ICT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통신·방송 생태계의 선순환 발전 체계를 지원할 수 있는 산업 정책과 규제 정책으로 균형을 찾아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표〉혁신서비스 출현과 이용자 후생 가로막는 규제 사례
〈표〉2015년 세계경제포럼(WEF) 네트워크 준비지수 항목별 한국 순위
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