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LG전자가 손잡는 일은 흔치 않다. 그러나 '공공의 적'이 나타나면 상황은 달라진다. 지난 7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수입 세탁기 긴급수입제한(세이프가드) 조사 공청회를 열었을 때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미국 가전업체 월풀 공동 대응에 나섰다.
월풀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멕시코 및 중국에서 세탁기를 생산·수출하다 미국이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자 생산지를 각각 베트남, 태국으로 옮겨서 우회 덤핑을 했다고 주장한다. 자국 제조업체가 피해를 보고 있다며 특정 수량 이상을 수입하는 세탁기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해 줄 것을 요청했다. 바로 세이프가드다.
자국 산업이 막대한 피해를 봤다면 세이프가드는 필요하다. 국제 무역에서 문제가 되는 덤핑을 규제하는 핵심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월풀은 세이프가드라는 안전장치를 뒤떨어진 경쟁력을 숨기기 위한 방패로 쓰려는 듯하다.
우선 미국 내 세탁기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삼성과 LG, 우리 정부가 ITC에 제출한 의견서에는 조사 대상 기간인 2012~2016년 미국 세탁기 출고량이 30% 이상 는 것으로 명시돼 있다. 시장 자체가 커졌기 때문에 세탁기 수입이 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미국 소비자가 수입 세탁기를 택했다면 이는 기술과 성능을 높이 평가한 결과다. 세계 가전 시장을 주도하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저렴한 가격만 앞세울 리 없다. 오히려 프리미엄 전략을 전면에 내세운 삼성전자와 LG전자에 우회 덤핑은 자사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월풀이 피해를 봤다면 소비자 마음을 읽지 못한 경영 전략이 한몫했을 것이다. 우리 기업이 시장 트렌드를 주도하는 혁신 제품을 출시하는 것과 상반된다. 기술과 성능, 사용자 편의성 등 경쟁력에서 우위를 차지하지 못한 것을 자국 산업 보호라는 보호무역주의로 덧칠한 셈이다.
시장은 끊임없이 변한다. 흐름을 타지 못하면 결국 도태된다. 월풀이 세이프가드 등 보호무역주의의 방패에 기대더라도 이는 잠시뿐이다. 스스로 혁신해서 시장을 주도할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미래는 없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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