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10시에 또 하나의 '판도라 상자'가 개봉된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5·6호기 공사 재개 여부를 담은 대정부 권고안을 발표한다. 수개월 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원전 공사 중단 사태를 매듭지을 수 있는 내용이다. 정부는 공론화 결과를 토대로 오는 24일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최종 결정을 내린다.
시민참여단 471명이 고심 끝에 내린 신성한 의견을 판도라 상자로 표현하는 것이 죄송스럽지만 앞으로 일어날 혼란을 표현하기에 더 적합한 말은 없는 듯하다.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의견이 대립하는 사안을 공론화로 풀어내려는 정부의 시도를 탓할 생각은 없다. 이제 와서 '공론화가 의미 없다'고 하는 것은 그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다. 공론화는 공론화대로 의견을 도출한 것이다. 그것이 반드시 정답이란 법이 없듯 오답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다. 공론화 결과가 어떤 방향으로 나오든 논란은 불가피하다. 원전을 둘러싼 찬성, 반대 진영 간 대립은 앞으로 남은 문재인 정부의 4년 반 임기 동안 계속될 것이다. 같은 공방을 반복하느라 미래 에너지 시대를 준비하는 것은 물 건너갈 공산이 크다.
제조 강국이지만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가 원자력이라는 주요 에너지원을 스스로 버리는 것은 우려할 바다. 문재인 대통령이 탈원전에 6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고 했듯 앞으로 수십년 동안 원자력 기술이 어떻게 발전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세계 에너지 자원 시장 구조가 어떻게 뒤바뀔지도 예측하기 어렵다.
불확실한 미래를 앞에 놓고 입증된 에너지원 하나를 아예 없애는 결정은 리스크가 크다. 에너지 자원에서 약점이 많은 우리나라는 가능한 여러 솔루션을 보유해야 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탈원전 방침을 유지하는 분위기다. 정부는 일찌감치 공론화 결과가 탈원전 정책과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 결정이 나도 그 이후 신규 원전 공사는 추진하지 않을 모양새다.
정부가 요즘은 탈원전 대신 '에너지 전환'이라 칭하지만 별 의미가 없다. 신규 원전 건설 중단을 고수하는 한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전환은 탈원전과 다를 게 없다. 원전을 새로 짓지 않으면 폐기를 기다리는 노후 원전만 남는다. 더 이상 기술 발전은 없다. 한 번 훼손된 산업 생태계는 쉽사리 복원되지 않는다.
사실 문 대통령의 탈원전 선언은 성급했다. 원자력이 에너지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으면 자연 도태될 것이다. 더 좋은 에너지가 있는데 왜 원자력을 쓰겠는가. 60년 뒤든 100년 뒤든 원전이 효용성을 다하고 사라지면 그때 대한민국 대통령이 탈원전을 선언하면 될 일이다.
문 대통령이 '열린' 에너지 전환 정책을 추진하길 바란다. 원전 찬성이든 반대 진영이든 좀 더 깨끗하고, 안전하고, 경제성 있는 에너지를 찾으려는 교집합은 분명 있다. 여기에 주목하길 바란다. 탈원전이라는 극단으로 접근하면 반쪽짜리 '닫힌' 에너지 전환 정책에 그친다.
신재생뿐만 아니라 원자력에도 미래 에너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또 다른 유망 에너지가 떠오르면 마찬가지로 기회를 줘야 한다. 이것이 문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원하는 미래 에너지 시대를 여는 길이다.
이호준 산업정책부 데스크 newleve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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